열린마당

[주말 편지] 성모님의 음성 / 박다윤

박다윤(마틸다)rn시인
입력일 2019-08-06 수정일 2019-08-06 발행일 2019-08-11 제 3157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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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렸을 때, 성당 부설 유치원에 다닌 적이 있다. 나는 양 갈래머리를 쫑쫑 따고 1~2살 많은 친구들과 같이 유치원 생활을 했다. 그땐 세상이 얼마나 즐겁고 흥미로웠던지 꽃들은 날 반겨줬고, 수녀님들은 또래보다 어린 나를 성심껏 도와주셨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면 수녀님들이라고 생각을 했고, 나도 모르게 수녀가 되고 싶다는 서원을 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초등학교 때부터 나는 천주교보다 개신교에 더 열중했고, 개신교회에 다녔다. 그러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야간자율학습(야자)에 지루해하고 있을 때, 한 친구가 “야자 땡땡이치고 어디 좀 가자”고 유혹했다. 유혹에 넘어가 그날 하루 야자를 못했다. 그때 친구가 날 데리고 갔었던 곳은 전북 전주 전동성당이었다. 성당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참 오랫동안 성당을 멀리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기도하게 됐다. 그리고 밀려오는 안도감에, 이 안도감은 차라리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삼수를 하고 내가 학부 때 공부한 것은 신학이었다. 그것도 개신교 신학이었다. 나는 점점 천주교와 멀어져 갔고, 그렇게 개신교 신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그때부터 나의 갈등은 시작됐다. 내가 믿는 종교에 대해 이것이 옳은지, 무엇이 좋은지 끝없는 고민을 했다. 그렇게 나는 마음 한편에 묻어뒀던 신앙에 대한 갈등의 숙제를 끝내가는 중이었다.

시의적절하게도 “우리 성당 가자”라는 이모의 말은 구원의 소리처럼 들렸다. 나는 주저 없이 이모가 먼저 다니고 있던 성당에 나가 교리공부를 하다가, 서울 서초동본당에서 처음부터 다시 교리공부를 시작했다. 교리공부를 하던 중 나는 신비한 경험을 했다. 무거운 돌덩이가 가슴속을 항상 짓누르고 있었는데, 그 무거운 돌덩이가 치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성모님의 음성이 들렸다.

“잘 왔다. 오래 기다렸다.” 분명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이었다.

유년 시절의 기억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성모님은 머리를 양 갈래로 따고 다녔던 어린 소녀를 위에서 늘 내려다보셨고, 하루도 빠짐없이 지켜보셨을 것이다. 언제나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겨주시기도 했다. 쉼 없이 재잘대면서 유치원을 돌아다녔던 나를 말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은총은 까마득하게 잊은 채 한동안 개신교 신자로 살았던 동안에도, 그 오랫동안에도 하느님과 성모님께서는 더욱 깊은 뜻으로 나를 단련시키고 있었다는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게 됐다.

내 방에 두터운 믿음의 옷을 입고 두 손을 모으고 언제나 기도하는 성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해본다. 항상 내가 잘돼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되도록 늘 기도하는 모습으로 조용히 내려다보는 성모님의 모습은 어느 순간 내게 편안함을 주고 있다는 것을, 성모님의 기도로 내가 하루하루 행복하다는 것을, 이제야 느끼고 있다.

성모님께서는 한 번씩 꼭 필요할 때 신자를 부르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성모님께서 내 발걸음을 성당으로 인도하신 그때, 그때가 최적의 시간임을 이제야 깨달았다.

‘사랑이신 주님, 그리고 어머니 마리아여! 제가 하느님과 성모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시고, 저보다 낮은 사람에게도 봉사할 줄 아는 은총을 베풀어 주소서.’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박다윤(마틸다)rn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