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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오해 속에서도 끝까지 선을 실천하는 용기 / 최인각 신부

최인각 신부 (안법고등학교 교장) rn
입력일 2019-08-27 수정일 2019-08-27 발행일 2019-09-01 제 3160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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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나이 서른일곱에 로마 유학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건강하지도, 언어 감각도 뛰어나지 않았기에, 공부하는데 애먹었습니다. 그래도 장점이 있었다면, 유학 가기 전에 가방 줄이 길었다는 것입니다. 일반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직장 생활도 하고, 신학교에서 홍범기 신부님께 석사 논문지도를 잘 받았기에, 로마에서 법을 공부하는 데 그리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로마는 나를 기쁘게 반겼지만, 문제는 시간과 언어와 건강이었습니다.

이러한 여건을 극복하기 위해, 매일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다니고, 1시간 정도 헬스장에서 땀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평일에는 학교 공부에 여념이 없었고, 주말에는 이탈리아 본당에서 3대의 미사를 드리며 지냈습니다. 해내야 할 공부와 시험, 매주 강론 준비, 거기에다가 교황청에 개설된 과목까지 병행해야 했기에 정말 정신없는 날들을 보냈습니다. 이런 저를 보고 많은 이가 걱정과 우려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것이 저의 길이라 여겨 무던히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저를 돕는 천사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머물던 멕시코 선교수도회 신부님과 수녀님들, 격려와 사랑을 아끼지 않았던 로마 한인들, 미사 드렸던 이탈리아 본당의 신부님들과 신자들, 주말과 방학에 머물던 예수성심전교수녀원의 수녀님들, 논문 교정을 도와주었던 다윗 신부님, 논문지도 안드레아스 신부님, 그밖에도 많은 분이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걱정과 우려를 보냈던 분들도 모두 저를 도와주는 천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학위 심사를 받게 되었는데, 정말 많은 분이 축하해주러 오셨습니다. 심사 말미에, “제가 잃은 것과 얻은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잃은 것은, 약간의 머리카락, 약간의 건강, 약간의 젊음입니다. 반면에 공부하는 법, 많은 친구, 아름다운 사랑을 얻었습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순간 박수가 터져 나왔고, 저도 마음껏 웃었습니다.

안법고등학교에 와서, 공안국 신부님의 생애를 보면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부님이 어렵게 안성에 도착하여 선교의 첫발을 내디뎠을 때, 정작 주민들은 신부님을 ‘불청객’으로 내쫓으려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신부님은 정신적 충격으로, 식사 문제와 이질과 변비로 고생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신부님께서는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고, 악마가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하면서, 안성 사람들을 두둔하였습니다. 신부님은 언젠가 거두어들일 날을 기대하며 ‘착한 의견의 성모님’께 전적으로 의탁하였습니다. 당신이 한국 사람, 안성 사람으로 뿌리내리기를 희망하며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리고 가난하고 아픈 이들을 돌보며,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신부님은 약 6년간 고독과 슬픔의 시간을 보내고는 “마침내 여기저기에서 이삭들을 줍는 행복을 맛보았다”라고 회고하셨습니다.

오해와 편견, 불친절한 대접 가운데서도 끝까지 선을 희망하며 달릴 길을 다 달리신 ‘용기 있는 공안국 신부님’처럼 참다운 행복을 맛보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해봅니다.

최인각 신부 (안법고등학교 교장) 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