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당신과 나의 사랑법 / 김형태

김형태 (요한) 변호사
입력일 2019-09-17 수정일 2019-09-17 발행일 2019-09-22 제 3162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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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 중턱 관음사 마당에 잠자리 떼들이 맴을 돕니다. 절 초입을 막 들어서는 노인네 배낭에 매달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여인의 애절한 노랫소리에 산사는 더욱 적막합니다. “당신은 모르실거야, 얼마나 사모하는지. 이름을 불러주세요. 나 거기 서 있을 게요.”

님을 향한 애틋한 마음에 법당 안 부처님도 가슴 짠해 하실 거 같습니다. 옛날엔 유치하다 제쳐놓던 유행가 가사들이 새삼 가슴에 와닿는 걸 보면 이제 좀 철이 들어가는 건가. 사는 게 뭐 별거던가요.

가십니까, 날 버리고 가십니까. 잡아두고 싶지만 싫증 나면 아니 오실까. 이별하기 서러운 님 보내오니, 가시자마자 다시 오소서.

고려 때 유행가 ‘가시리’도 그런 사랑을 안 해 본 사람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절창(絶唱)이지요. 동서고금을 통해 수도 없이 많은 사랑 노래가 때론 우리를 울리고 때론 우리를 위로합니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자기 자신을 계속 존속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자식을 낳는 거고 이를 위해 암수 간의 사랑이 있는 것이니 그 속성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거지요. 자식 사랑도 ‘제 분신’인 자식을 사랑한다는 점에서 근본에 있어서 이기적이긴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기적 속성의 사랑도, 그 사랑을 제대로 하는 이들은 정말 자신은 잊고 상대에게 주기만 하는 사랑도 감수한다는 거지요. 유한한 인간이 진짜 사랑을 통해 그 유한성을 뛰어넘는 ‘초월’을 하는 겁니다.

남을 먹어야 살고, 또 언젠가는 죽어 소멸한다는 이 절망적인 유한성을 뛰어 넘어보고자 여러 종교가 나타났습니다.

그리스도교나 이슬람교는 신과 이웃을 향한 절대적 사랑을 말합니다.

불교는 세상 모든 게 서로 기대어 있어, 저 혼자 변하지 않고 독립된 실체는 없다는 연기(緣起) 법칙을 깨달아 삼라만상에 자비를 베풀라 합니다. 이 모두가 다 나의 유한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공부이고 노력들입니다.

그런데 실상 많은 종교인들이 이 초월의 사랑법을 이기적 사랑법으로 잘못 새기고 있습니다. ‘내’가 구원받아 영원히 살고, ‘내’가 해탈해 열반에 들겠노라고. 그러다 보니 그 하는 말과 생각과 행동이 다 자기중심적입니다. 이기적인 암수 간 사랑이나 자식 사랑에서 출발해 정말 이기를 초월하는 속세의 사랑도 있는데 말입니다.

개신교 찬송가 중에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로다, 영생을 얻으리로다.” 요한복음 3장 16절을 가사로 한 건데 이걸 이렇게 잘못 새기면 최악의 이기주의 찬양 노래가 됩니다. “‘내’가 영원히 죽지 않고 살기 위한 방편으로 독생자를 믿는다. 독생자를 믿는다는 건 독생자가 나의 구세주라는 걸 믿는 것이다.” 이기(利己)를 위해 예수라는 이름을 빌리는, 동어반복의 끝없는 연속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건 당신께서 자기를 버리는 사랑을 함으로써 개체를 초월해 전체와 하나됐음을 믿는다는 거겠지요.

열심히 공부한다는 스님들도 그렇더군요. 이 개체 ‘나’가 깨우침을 얻어 열반의 ‘지위에 들어가는’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음을 모르고, 개체 ‘나’의 깨달음과 열반에 평생 목을 매는 안타까운 모습들을 봅니다.

영생이나 열반은 이 몸이 죽은 뒤에 다시 이 개체를 유지하면서 살아나서, 어디로 가는 게 아니고, ‘지금 여기서’ 사랑과 자비로 이 개체의 유한성을, 삶과 죽음의 차원을 넘어서는 거라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개체의 유한성을 넘어서는 순간 초월의 주체가 되는 개체 ‘나’는 이미 없어진 거지요. 그래서 개체인 ‘나’의 초월을 바라는 건 헛된 꿈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랑법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나’라는 유한성으로부터의 초월을 꿈꾸기도 하고 사랑을 통해 남을 내 수단으로 삼아 나를 더 강화시키려 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랑은 그 중간 어디쯤에 있겠지요. 동서고금의 수많은 사랑 노래며 종교의 가르침들이 다 이 ‘사랑’의 여러 변주곡들입니다.

당신과 나의 사랑법은 어떤 걸까요.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형태 (요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