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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신호 주고받기와 평화의 길 / 이원영

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입력일 2019-09-17 수정일 2019-09-17 발행일 2019-09-22 제 3162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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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9일은 북한의 정부 수립 기념일이었다. 지난해에 정부 수립 70주년을 맞이해 북한은 이를 성대하게 자축했다. 흔히 말하는 꺾어지는 해라는 의미도 있었지만, 6월 싱가포르에서 있었던 제1차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의미였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올해에는 최선희 외무성 1부상이 미국과 다시 협상에 나설 생각이 있다는 담화를 9월 9일 발표했다.

미국의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최선희 담화 전인 6일, “어느 나라든 방어할 주권적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북한이 비핵화하면 안전보장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긴장이 완화되면 우리 군이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항상 유지·훈련할 필요가 없다. 주한미군 주둔 문제는 모든 문제에서 진전이 있을 때 사용 가능한 전략적 재검토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최선희 담화는 이에 대한 호응이었다고 보인다. 국제정치에서는 이를 ‘신호 주고받기’(signalling)라고 한다. 그러나 북한은 담화 직후 평안남도에서 동해안 쪽으로 발사체를 쏘았다. 굳이 북한은 최선희 담화 직후 왜 발사체를 쏘았을까? 그것은 북한이 자신의 무기 체계 고도화를 과시하면서도 대륙간탄도탄(ICBM)이 아니라는 점에서 방어용 무기라는 신호를 미국에게 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경질 역시 또 하나의 신호일 수 있다. 물론 이는 꼭 북한 문제 때문이라 할 수는 없지만, 강경 매파 볼턴의 경질은 북한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북미 간의 신호 주고받기가 북미 실무협상 재개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만일 협상이 재개된다면 북한의 비핵화 과정이 장기적인 프로세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고려해 이번에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북한 비핵화의 첫 단계에서 북한의 행동에 대해 미국이 ‘북미 불가침협정’ 체결로 화답하는 것은 어떨까? 특히 각 단계마다 이미 진전된 전 단계의 상황을 되돌리려 하는 측에서 큰 손해를 보도록 설계될 수는 없을까?

“옹기장이의 그릇이 불가마에서 단련되듯이 사람은 대화에서 수련된다”(집회 27,5)는 말씀처럼 북한과 미국 모두 협상을 통해 수련돼 다시 협상과 결렬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데 북한의 안전보장 문제는 미국이 열쇠를 갖고 있다 할 수 있겠지만,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은 남북 협력이 공고화될 때만 가능하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완화될 때, 북한 경제 재건을 위한 투자는 남북 협력에 입각하는 것이 그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다. “정녕 평화의 씨앗이 뿌려지리라. 포도나무는 열매를 내주고 땅은 소출을 내주며 하늘은 이슬을 내주리라”(즈카 8,12)는 말씀처럼 이제 남북과 미국 모두 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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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