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우리 본당 주보성인] 아기 예수의 데레사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9-09-30 수정일 2019-10-07 발행일 2019-10-06 제 3164호 4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일상에서 자신 봉헌하며 성화에 힘써
‘작은 길’ 영성 강조하며 실천 
자서전 출판되며 널리 알려져 
매탄동·서정동·감골 등 주보

아기 예수의 성 데레사.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인은 ‘작은 길’ 영성을 강조하며 하느님과 함께하는 신비체험 속에서 ‘사랑’의 소명으로 살아간 수도자다.

소화(小花)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한 성인은 1873년 프랑스 북서부의 알랑송에서 9명의 자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성인의 부모는 성 루이 마르탱과 성 마리아 젤리 게랭 마르탱이다. 신심이 매우 깊은 부부의 삶을 따라 성인은 어려서부터 경건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자랐다.

성인은 7살 때부터 고해성사를 즐겨 받았고 특히 성모 마리아에 관한 신심이 두터웠다고 한다. 성인은 9세에 중병에 걸렸으나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던 중 성모상이 미소를 지으면서 병이 기적적으로 치유되는 체험을 했다. 성인은 1886년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직후 하느님을 체험하면서 자신의 영혼에 사랑이 넘치는 것을 느꼈고, 이웃을 위해 자신을 완전히 봉헌해야함을 깨달았다. 체험이 있은 지 며칠 후 성인은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의 상본을 보면서 다른 영혼들을 돕고자하는 열망에 사로잡혔고, 성소의 길을 걷고자 결심했다.

성인은 리지외에 있는 가르멜 여자 수도원에 입회하고자 했다. 이곳은 이미 성인의 두 언니가 입회한 수도원이기도 했다. 그러나 수도원은 성인이 21세가 될 때까지 기다리라는 통보를 했다. 성인과 성인의 아버지는 교구의 주교에게 입회를 요청하기도 하고, 로마로 순례를 하던 중 레오 13세 교황에게 수도원에 입회할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마침내 성인은 주교의 허락으로 15세의 나이로 입회할 수 있게 됐다.

성인은 수도원 규칙에 충실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직무들을 묵묵히 수행했다. 그러면서 성인은 자서전 「작은 흰 꽃의 이야기」를 집필했다. 성인의 별명이 ‘작은 꽃’, 바로 ‘소화’가 된 것도 이 자서전에서 유래한다.

성인은 자서전에서 ‘작은 길’이라는 영성을 강조했고, 성인 스스로 그 영성에 따라 살았다. ‘작은 길’ 영성은 하느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매일의 삶에서 주어진 임무를 성실히 행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면 작은 길을 통해서도 거룩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성인은 “대성인들께서는 하느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살았지만, 나는 한낱 작은 영혼이므로 다만 하느님께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 일할 뿐”이라며 “나는 하느님 손에 드리워진 작은 꽃, 보잘 것 없는 장미가 되더라도 그 모습과 향기로 하느님께 어떤 즐거움이라도 드릴 수 있다면 만족한다”고 기도했다. 성인은 평범한 일상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봉헌하는 삶을 살았다.

성인은 18개월간 투병하면서도 수도원의 기본 의무들을 지켜나가다가 선종했다. 성인이 죽은 후 성인의 자서전이 출판되면서 성인의 영성이 널리 알려졌다. 처음에는 비공식적으로 출판됐지만, 이 자서전을 요청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자 공식적으로 책이 출판됐다. 이후 15년 만에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돼 수백만 권이 넘게 보급됐다. 비오 11세 교황은 이런 반응을 “폭풍과 같은 열광”이라고 불렀다. 성인은 선종한지 26년만인 1923년 시복됐고, 곧이어 1925년 시성돼 ‘아기 예수의 성 데레사’로 선포됐다. 이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성인을 ‘교회 학자’로 선포했다.

성인은 제1대리구 매탄동·서정동본당과 제2대리구 감골·금정·단대동·보정·점동본당의 주보성인이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