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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탈진실 시대, 매우 민감해진 선거보도 / 김지영

김지영(이냐시오)rn전 경향신문 편집인
입력일 2019-09-30 수정일 2019-10-01 발행일 2019-10-06 제 3164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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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을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17)
어느새 총선이 다시 코 앞으로 다가왔다. 21대 총선은 내년 4월 15일 치러지므로 남은 기간은 6개월여. 정치인 개인과 각 정당·정파들은 그 생체 리듬이 총선 모드로 돌입했다. 정치권력의 획득을 우선 목표로 하는 그들에게는 아마도 사활을 거는 때가 왔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새삼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원론이지만, 민주주의는 국민의 손으로 권력을 선출하는 선거가 그 꽃이며 현실적으로 그 꽃을 피우는 과정은 미디어에 의해 진행된다.(사실 정치 행위 전반을 미디어가 중계하고 진행하지만.)

“독자나 시청자, 유저들이 미디어를 어떻게 제대로 식별해서 읽는가?”라는 미디어 리터러시의 관점에서도 중요한 때가 오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가 시민들의 생활에 정착했고, 미디어 생태계의 질서가 한 해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오늘날, 선거는 더욱 예민하게 미디어에 투영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이 란에서 언급했지만, 유튜브 등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특성 중 하나는 (전통 미디어들에 비해) 객관적 사실보다는 ‘내 취향과 신념’에 맞는 콘텐트를 중시한다는 것이며 이 때문에 ‘탈진실 시대’(옥스포드 사전)라는 개념 정의도 나왔다. 다시 말하자면, 미디어 생태계에서 사실보다 의견이나 맥락, 해석의 비중이 더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저널리즘의 초침도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 듯 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가령, 객관적 공정성과 같은 개념은 상대적으로 불안해지기 쉽다. 문제는 선거, 그리고 선거보도에서는 공정성이야말로 기본 전제라는 점이다.

‘내 취향과 신념’을 중시하는 그 많은 디지털 미디어들이, 그리고 이 같은 뉴미디어의 생태질서에 거꾸로 영향을 받고 있는 전통 미디어들이 예전 수준의 객관적 공정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만큼 선거를 관리하는 제도와 행정력에 개선이 있어야 하고, 매체들과 시민사회의 팩트 체킹 기능 강화도 따라야 하지만, 이런 점에서 보더라도 시민들에 대한 미디어 리터러시는 보편적·필수적 공교육으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

선거보도의 원칙으로는 흔히 공정보도, 진실보도, 유용한 정보의 보도, 독립적 보도 등이 거론되지만 우선은 공정성 문제가 중요하다. 공정성과 관련해 매체들이 자주 위반해왔고 또 앞으로 더 불거질 것으로 예상되는 유형의 보도로 대표적인 것이라면 ▲특정 정치인·정당 띄우기 ▲여론조사 결과의 왜곡을 들 수 있다.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 띄우기 보도는 신문윤리 실천요강 제1조 ①(정치권력으로부터의 자유), 제3조 ②(공정보도)에 어긋난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가 적발해 징계한 사례를 보자. ○○○○일보가 지난 4월 17일자 3면에 보도한 「익산갑 제외 곳곳이 지뢰밭」 제목의 기사를 보면 ‘○○○의원에 맞설 눈에 띄는 경쟁자가 없다’고 돼있다. 또 ○○매일은 지난 2월 21일자 6면 「차세대 철강산업 클러스터 프로젝트 실현 사활건다」 제목의 기사에서 지면 절반을 할애, 차기 총선에서 이 지역 출마를 도모하고 있는 ○○○씨의 역량을 대서특필했다. 이 같은 신문기사는 거의 매일 나오고 있으며 인터넷 매체의 보도는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힘들 정도다.

현대 정치, 특히 선거에서는 여론조사가 필수적인 요소이며 관련 보도 또한 매우 중요하다. 이 때문에 한국신문협회와 한국방송협회, 한국기자협회, 한국인터넷신문협회 등 주요 언론단체들은 공동으로 선거여론조사 보도준칙을 따로 만들어 공포했다. 여기에는 여러 항목의 보도기준이 있는데 신문과 방송, 인터넷 매체 할 것 없이 일상적으로 자주 위반하는 내용이 바로 제16조(오차범위내 결과의 보도)이다.

역시 한국신문윤리위원회가 적발한 사례를 보면 ○○신문과 ○○일보, ○○경제 등 매체들이 새해인 지난 1월에 들어 표본오차 ±3.1% 포인트의 ‘대선 주자 지지율 여론 조사’를 보도하면서 이낙연과 유시민의 지지율이 각각 20.6%, 17.8%로 차이가 2.8%여서 표본오차 내 인데도 ‘1, 2위’라고 순위를 매겼다. 당시 또 다른 매체들도 표본오차 내의 지지율 차이를 무시하고 순위를 매겼으며 이 같은 보도행태는 끊이지 않고 되풀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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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이냐시오)rn전 경향신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