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독자마당] 한 알이 모자란 할아버지의 묵주

김동만(마티아·전주교구 임실본당 관촌공소)
입력일 2019-09-30 수정일 2019-10-08 발행일 2019-10-06 제 3164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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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그게 뭐예요?”

“묵주란다.”

손자 녀석이 신기한 듯 캐묻는다.

“이렇게 한 알씩 굴려가며 기도하는 거란다.”

그러자 손자 녀석은 “할아버지, 이 인형하고 바꾸자” 하며 묵주를 낚아챈다.

“안 돼” 하며 손자 녀석과 묵주를 가지고 줄다리기를 하다가, 그만 줄이 끊어지고 말았다.

방바닥에 나뒹구는 묵주알. 손자 녀석은 울음을 터뜨리며 할머니한테 달려가 버린다. 나는 나뒹구는 묵주알을 한 알 한 알 주워서 굵은 실로 다시 꿰어봤다. 그러나 어디로 갔는지 아무리 찾아도 결국, 묵주알 하나가 부족한 묵주가 되고 말았다.

25년 전부터 나를 달래고 위안이 되었던, 나에게는 추억과 인생이 담긴 소중한 묵주였다. 그동안 나의 손에서 떠나지 않았던 손때 묻은 묵주!

25년 전, 본당에서 연령회장을 할 때였다. 실비아라는 자매님이 위급한 상황이니 빨리 오라는 전갈을 받았다. 급히 그 자매님 집에 도착했을 때, 자매님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승에서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계셨다. 이후 자매님은 힘겹게 눈을 뜨며 꼭 쥐고 있던 묵주를 내 손에 쥐어 주며 눈짓으로 묵주기도를 봉헌해 달라는 뜻을 전하셨다. 나는 자매님 뜻에 따라 그 묵주를 손에 쥐고 기도를 봉헌했다. 그 묵주는, 나에게 묵주기도를 해 달라고 하신 자매님의 인생과 소망과 사랑이 담긴 소중한 물건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 뒤부터 묵주기도를 바칠 때마다 자매님 모습을 떠올리며 자매님의 안식을 주님께 청하였고, 신앙의 힘을 다시금 깨닫는 계기로 삼아왔었다.

묵주에 대한 나의 자랑을 조금 더 이어가보자면, 요즘에야 몇 천 원이나 몇 만 원만 주면 좋은 묵주를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소중한 묵주는 그 재료가 귀리라는 곡식으로, 현대인들이 건강식으로 애용하는 밭에서 나는 곡식으로 만든 것이다. 철사를 불로 달구어 한 알 한 알 구멍을 내고 실에 꿰어 만든, 세상에서 보기 드문 귀한 물건인 것이다. 떨어진 묵주알을 주워 다시 실에 꿰어, 한 알이 모자란 묵주를 만드는 주름진 나의 손가락을 보니, 묵주와 같이 수많은 세월의 풍상이 서려 있는 거 같다.

실비아 자매님이 세상을 떠나신 그 무렵, 공소에는 레지오 단체인 ‘사도들의 모후’팀이 결성됐다. 벌써 25년…, 우리는 봉사활동과 예비신자 모집, 그리고 성당 발전을 위한 신심단체로서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려 노력해 왔다.

나는 유언하고 싶다. 이 묵주만큼은 이승에서 나의 마지막 날이 되었을 때 우리 사도들의 모후 팀 성모상 옆에 놓고, 단원들이 보며 신심을 생각하는 상징물로 쓰이기를….

오늘도 우리 단원들은 성모님 촛불 앞에 모여 앉아 묵주알을 돌려가며 기도한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단원들이 합창하는 목소리가 비 내리는 저녁 구성진 하모니가 되어, 천상에 계시는 성모님 귀에 들리게 하소서. 이들의 마음속에 성령께서 함께 하기를…. 이들은 주님을 안 그날로부터 주님을 믿고 주님의 양떼를 모아들이고, 주님의 뜻에 맞갖은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단원들이 신앙 선배님들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훌륭한 신앙인이 되기를 주님께 간절히 두 손 모아 빌어봅니다.

김동만(마티아·전주교구 임실본당 관촌공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