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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민주주의와 역사의식 / 오세일 신부

오세일 신부rn(예수회,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입력일 2019-10-07 수정일 2019-10-08 발행일 2019-10-13 제 3165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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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한국사회는 촛불과 맞불의 대립이 지속되는 가운데, 이른바 ‘조국사태’를 통해 그 갈등과 분열이 극도로 심화되고 있습니다. 법무부 장관과 그 가족에 대한 공방이 이어져 왔지만 사실 그것은 표면적인 구실에 불과하며, 헤게모니(패권)를 주도하려는 숨은 세력들 간의 경합이 더욱더 노골화된 현상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사태의 본질을 한 개인의 문제에 국한해서는 안 됩니다. 정치인들뿐 아니라 편향된 언론과 검찰이 가세한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서 다시금 ‘민주주의’와 ‘역사의식’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이 필요함을 절감합니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국가 권력의 주체’임을 선포하는 정치체제와 이념을 포괄합니다. 민주공화국가인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천명합니다. 하지만, 국민은 다양한 배경, 계층, 종교, 직업 등 이질적인 구성원들과 다양한 집단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공존하며 대화와 타협을 추구하는 가운데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곤 하지만, 그것은 형식적 절차에 해당할 뿐입니다. 전제정치나 과두정치와 비교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권력 독점’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우위에 있지만, 그렇다고 민주주의 체제와 다수결의 원칙이 완벽한 제도는 결코 아닙니다. 프랑스 대혁명이나 한국의 촛불혁명에서 드러난 ‘역사의식’이 배제된다면, 언론 선동에 기만당한 국민들은 총체적 진실을 외면하고 다양한 집단이기주의에 갇혀서 ‘세력 싸움’으로만 치닫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의식은 민주주의라는 지배양식에 피와 살을 입혀 주는 실제적 내용입니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군사독재에 항거하는 민주화 운동에서부터 최근의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보편적 인권과 공동선의 가치를 추구하며 역사의 수레바퀴를 전진시켜 온 치열한 과정이었습니다. 보다 더 정의롭고 공평한 사회, 공동선의 가치가 실현되는 사회를 향한 역사의 도도한 흐름은 그 어떤 세력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정신이 됐습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자유와 민주를 가장한 다수의 횡포나 집단 이기주의를 넘어 시민 모두가 깨어 있는 역사의식과 사명감을 가질 때 구현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사법부와 검찰은 ‘촛불혁명의 역사적 소명’을 깨닫고 시대적 과오를 개혁해야 합니다. 일본총독부가 조선인을 손쉽게 처단하기 위해서 무제한 강제수사를 감행하도록 비정상적 특권을 법제화한 데서 시작된 검찰의 막강한 권한은 오늘날 무소불위의 ‘권력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검찰 내 범죄에는 눈을 감고 ‘표적수사’와 ‘선택적 수사’를 감행하며,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 권력은 예수도 공자도 부처도 ‘신상털이’로 범죄자로 만들 수 있을 정도라고들 합니다. 또한 영수증 처리조차 하지 않는 검사들의 천문학적 액수의 특수 수사비 관행과 로비향응, 각종 일탈이 근절되도록 과감한 개혁을 추진해야 합니다.

검찰 개혁은 오늘날 ‘시대적 과제’입니다. 특히 독재자의 안위를 옹립하며 초법적 권력을 휘둘러 왔던 공안검찰과 정치검찰의 구시대적 파행은 반드시 근절돼야 하며 ‘국민주권’ 시대에 공적 책무성이 수립될 수 있도록 검찰에 대한 견제 장치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또한 언론인들은 진실에 근거해서 역사의 수레를 전진시키는 시대적 소명을 실천하는 파수꾼이 돼야 합니다. 거짓 기사를 고의적으로 유포하거나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추측과 억지성 기사로 ‘쓰레기 정보’를 생산하는 미디어는 우리 사회를 혼탁게 하고 병들게 만듭니다. 연구하는 학자들이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도록 ‘IRB’(연구심의위원회)의 제도적 승인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신문·방송·유튜브 기사를 공표하는 미디어 종사자들 역시 타인에게 고의적으로 피해를 주지 못하고 공적 책무성을 따르도록 언론윤리심의 규정을 엄격히 입법화해 실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의회 민주주의 절차를 준수하지 않고 국회를 파행으로 만들며 길거리에서 세력싸움을 일삼는 국회의원들 역시 그 부끄러운 발자취가 역사에 남겨질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역사의식이 결여된 채, 친일파의 후손으로 기득권에만 매달리거나 공동선을 외면해 온 정치인들은 역사와 민초 앞에서 뼈저리게 반성하고 환골탈태해야 할 것입니다. “혼란스럽고, 진실과 평화와 정의에 목마른 오늘날… 역사는 과거를 반성하고 앞으로 갈 길을 보여 줍니다.”(프란치스코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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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일 신부rn(예수회,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