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헬기조종사의 병영일기] 올바른 심판이란?

이연세(요셉) rn예비역 육군 대령rn동서울대학교 교수
입력일 2019-10-15 수정일 2019-10-15 발행일 2019-10-20 제 3166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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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장 임기가 끝나갈 즈음의 봄날 아침! 지난밤 잠을 잘 잤는데도 불구하고 출근하는 길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스멀스멀 밀려 왔습니다. 대대장 지프차가 모퉁이를 돌아서자, 멀리 대대 현관에 평소와는 다르게 누군가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순간적으로 ‘아 뭔가 안 좋은 일이 있구나’ 직감했습니다.

저를 맞이한 사람은 다름 아닌 주임상사였습니다. 그는 경직된 표정으로 지프차의 문을 열어 주며 저의 안색을 살폈습니다. “주임상사! 이 시간에 웬일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대대장님! 죄송합니다. 휴가 나간 G중사가 오늘 새벽에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냈습니다”라며 머뭇머뭇 보고했습니다. “사람은 어떻게 됐어요?”, “00병원에 있는데 피해자는 없고, 본인도 외상 없이 가슴에 통증만 있답니다. 차는 폐차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차 싶은 생각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심호흡을 했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이 G중사의 모친이었습니다. 이전에도 두 번의 금전사고 경력이 있어 모친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남편과 사별하고 공장 구내식당에서 일하며 1남1녀를 키웠답니다. 딸은 번듯하게 잘 자라 출가를 했지만, 막내인 아들이 문제였습니다. 돈을 함부로 쓰는 낭비벽이 있었거든요. 월급으로 부족해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리는가 하면, 심지어 남의 돈에 손을 대기도 했습니다.

G중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고민하며 며칠 밤을 설쳤습니다. 이미 두 번의 사고를 눈감아 주었고, 다음에는 원칙대로 처리하겠다고 G중사 및 모친과 약조를 했었습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몰랐다면 고민을 덜 했겠지요. 다시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리라는 믿음만 있다면 좋을 텐데….

최종 결심 전, G중사의 어머니와 면담을 했습니다. 모친은 아들의 잘못에 대해서 눈물로 용서를 빌었습니다. 하지만 G중사를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징계를 받고 군생활을 이어갈 것인지, 아니면 자의에 의한 전역을 할 것인지를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G중사는 연이은 사고에 창피했던지 원에 의한 전역을 결정했습니다. 장기부사관으로 직업군인의 길을 걸어 갈 수도 있었는데 말이죠.

대대장 시절을 떠올리면 그 사건이 가장 아릿한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G중사 입장에서 ‘직업 군인으로 근무하느냐, 아니냐’는 인생의 커다란 변곡점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인간적인 고뇌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충 시간을 끌면서 얼마 남지 않은 대대장 임기를 마칠 수도 있었지요. 그러나 대대와 군에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기에 어려운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은 40대 초반으로 한 가정의 가장이 됐을 G중사! 절제력을 발휘해서 평범한 시민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이연세(요셉) rn예비역 육군 대령rn동서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