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현장에서] 그들이 남긴 것 / 이주연 기자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19-11-05 수정일 2019-11-05 발행일 2019-11-10 제 3169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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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최초의 순교자로 불리는 복자 윤지충의 유교식 조상제사 거부, 이른바 진산사건은 1791년 신해박해를 불러일으킨 계기였다.

윤지충과 권상연이 제사를 폐하고 신주를 태운 이 사건은 두 사람이 참수되는 것을 물론 많은 신자들이 체포되며 천주교에 대한 탄압을 더욱 강화하는 단초가 됐다. 구베아 주교는 서신에서 그들이 신주(神主)를 없앤 것은 어머니 안동 권씨의 유지를 따랐음을 밝힌다.

유교 이념이 국가의 지배 사상으로 절정이었을 당시, 상제례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상황에서 그 사실을 몰랐을 리 없는 양반가 여성 안동 권씨의 유언은 눈길을 머물게 한다. 그는 “장례를 치를 때 미신적이거나 하느님 법에 어긋나는 의식은 그 어떤 것도 해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며 운명한다. 적극적이고 결정적인 그의 신앙적 노력은 결국 시대를 탈바꿈하는 기초가 됐다.

박해시대 여성 평신도에 관한 기사를 준비하며 새삼 마주한 것이 있다.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구태에서 벗어나는 전환과 신앙 실천을 위한 매 순간의 결단이라는 점이다. 평신도는 사회의 누룩으로서 세상에서 주 예수의 부활과 생명의 증인이 되어야 하고, 살아계신 하느님의 표지가 되어야 할 것을 요청받는다.

안동 권씨, 복자 강완숙을 비롯해서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가치를 증거하기 위해 목숨 내놓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그들. 구걸하면서까지, 아픈 몸을 이끌고서라도 사랑의 가르침을 실천하는데 열심이었던 조선시대 여성 신자들 모습은 이 시대를 사는 평신도들에게 그 의미를 되살리게 한다.

이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