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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개성공단 재개를 염원하며 / 박천조

박천조(그레고리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
입력일 2019-11-12 수정일 2019-11-12 발행일 2019-11-17 제 317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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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1월 13일은 북쪽이 개성지역을 경제특구로 지정한 날입니다. 우리는 산업시설이 입주한 공간 개념으로 ‘개성공단’이라 불렀지만, 북쪽은 산업 및 각종 주거・문화공간이 포함된 복합 개념으로 ‘개성공업지구’라 불렀지요. 우리보다는 북쪽의 의미 부여가 컸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북쪽은 남쪽과 접한 곳에는 개성과 금강산을, 중국과 접한 곳에는 신의주와 라진선봉을 각각 경제특구로 지정하고 개혁개방을 준비하게 됩니다. 마치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 도시인 심천이 자본주의 도시였던 홍콩의 바로 옆에서 긍정적 영향을 받았던 것처럼 개성도 자본주의 도시인 서울의 바로 옆에서 이러한 영향을 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군사적 측면에서 보면 개성은 북쪽의 핵심전력인 2군단 6사단, 64사단, 62포병여단 등 6만여 명의 병력이 있었던 곳이죠. 그런데 이 곳에 개성공단을 조성함으로써 북쪽 군사시설이 15㎞ 후방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현재 규모가 1단계 100만 평이고 이때 15㎞ 이동한 것이니 최초 개발계획인 3단계 2000만 평으로 조성됐을 때는 얼마만큼 후방으로 이동했을지 미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개성공단은 분쟁지역인 휴전선 인근의 긴장을 완화함으로써 접경지역 일대를 평화지대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높였습니다.

경제적 측면에서 봤을 때 개성공단은 남북이 경제적 방식으로 협력할 수 있는 실험을 했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비록 우리 정부 스스로 중소기업 및 한계기업(수익성이나 경쟁력이 낮아 사양화 되는 산업)의 탈출구로 규정지음과 동시에 유엔과 미국의 제재 영향을 받아 첨단설비가 들어가지 못했지만 우리의 자본과 기술, 북쪽의 토지와 노동이라고 하는 생산요소의 결합을 통해 향후 경제협력의 고도화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게 됐습니다.

마지막 통일적 측면에서 봤을 때 우리나라의 공식적 통일방안인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의 단계에서 화해협력의 실질적 이행을 시도했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화해협력 단계에서는 정상회담을 비롯해 다양한 경제・사회문화・체육교류 등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개성공단은 ‘공단’ 방식의 협력사업을 통해 통일방안의 실질화를 도모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개성공단의 임금이 대량살상무기로 전용됐다는 오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근로자들의 월 임금이 중단 직전 15만 원 수준에 불과했고 이 돈으로 해외에서 쌀과 물자 등을 구매해 근로자들에게 공급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 주장은 다소 과장된 것 같습니다. 오히려 개성공단 사업이 한반도에 미친 긍정적 영향을 생각한다면 조속히 재개되는 것이 맞습니다. 다만 재개가 될 때에는 “자기가 저지른 죄를 깨닫는 대로, 흠 없는 숫염소 한 마리를 예물로 끌고 와서”(레위 4,23) 속죄 제물로 바치듯이 서로의 잘못을 겸허히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박천조(그레고리오)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