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르포] 주교 현장체험, 충북 황간성당과 백화마을을 가다

김현정 기자
입력일 2019-11-12 수정일 2019-11-13 발행일 2019-11-17 제 3170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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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이웃과 함께하는 마을 공동체, 행복한 일상에 미소 절로
생태적 삶 살아가는 백화마을
지난해 가톨릭환경상 대상 받아
공동 텃밭 수확물 누구나 가져가
사교육 대신 공동 체험과 여행

단풍이 곱게 물들어 가을빛이 완연했던 11월 7일. 대구·안동·제주교구 주교들이 충북 영동군 황간면에 모였다.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위원장 강우일 주교)의 주교 현장체험이 진행된 것이다.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 제주교구 부교구장 문창우 주교, 대구대교구 총대리 장신호 주교가 함께한 이날 체험은 청주교구 영동 황간성당을 시작으로 지난해 제13회 가톨릭환경상 대상을 수상한 백화마을을 구석구석 살펴보는 것으로 이뤄졌다. 파란 가을 하늘과 멋진 풍경, 푸근한 마을 인심이 어우러진 즐거운 나들이와 같았던 하루를 소개한다.

11월 7일 주교 현장체험에 나선 문창우·강우일·장신호 주교, 조환길 대주교, 권혁주 주교(왼쪽부터)가 청주교구 영동 황간성당에서 기도를 바치고 있다.

황간성당에 이르자 제일 먼저 들려오는 것은 이국적이면서도 흥겨운 음악이었다. 음악은 올 6월 문을 연 카페 ‘루아’(Ruah, 히브리어로 ‘숨’, ‘하느님의 숨’이라는 뜻)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카페는 고풍스러운 유럽의 응접실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벽난로와 피아노가 놓여 있고, 복도를 따라가면 자연스레 기도실로 이어진다.

이 공간은 네덜란드에서 사목활동을 했던 황간본당 김태원 주임신부의 아이디어가 그대로 구현된 곳이다. 음악도 체코 거리의 악사들이 직접 연주한 것이라고.

40여 년간 유치원이었던 이곳은 원아 수 감소로 폐원한 후 카페로 거듭났다. 카페는 신자들의 사랑방인 동시에 외부 손님들을 맞이하는 열린 공간이다. 카페 수익금으로는 한 달에 한 번, 매주 마지막 목요일 오후 7시에 전문 연주가를 초청한 음악회를 연다. 또한 성당 바로 앞에 황간 남성근린공원이 조성돼 있어 일부러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김 신부는 “교회가 다양한 형태로 봉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며 “봉사 받는 공동체가 아닌, 봉사하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 각지에서 주교들이 온다는 소식에 신자들은 나물에서 과일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의 농산물을 가지고 정성껏 푸짐한 집밥 한상을 차렸다. 든든한 점심식사에 이어 성전에서 기도를 바친 후, 차로 7~8분 거리인 백화마을을 찾았다.

백화마을에 들어서자마자 현수막 대신 폐박스를 활용해 만든 환영문이 눈에 띄었다. 생태마을인 백화마을의 특징이 작은 것에서부터 드러남을 느낀 순간이었다.

백화마을 곳곳에는 아기자기한 조형물들이 눈에 띈다. 항아리에 자연과 나무에 대한 시를 써 놨다.

마을 대표 조영호(루카)씨와 마을 주민 신자들은 밝은 미소로 주교단을 맞이했으며, 이어 조영호 대표의 마을 소개로 체험을 시작했다.

40세대 100여 명의 주민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인 백화마을에는 독특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볏짚으로 지은 스트로베일(strawbale) 하우스, 폐목재를 땔감으로 쓰는 펠릿 보일러, 태양광 패널 설치를 통한 에너지 자립 등 생태 건축적인 면이 돋보인다. 스트로베일 하우스는 초기 건축비용은 많이 들지만 온습도 조절, 방음효과가 뛰어난데다 수명이 100년 이상이다. 지붕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자연 소재라 폐기물 없이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마을 운영 방식도 특이하다. 모든 의사 결정은 다수결이 아닌, 만장일치로 이뤄진다. 또한 돈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동업을 금지하며, ‘개인이 행복해야 공동체가 행복할 수 있다’는 원칙 아래 모든 마을 행사는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카카오톡을 바탕으로 한 카풀, 물품 대리구매도 활발하다.

백화마을 주민들은 사교육 대신 함께하는 체험과 여행으로 아이들을 기른다.

여름철에는 마을 내에 물놀이장을 운영하고, 매년 마을 전체가 나들이를 가는데, 의미 있는 여행이 될 수 있는 장소를 선정한다. 지난해에는 소록도를, 올해는 전북 부안의 신재생에너지테마파크를 다녀왔다고.

한편 지난해 받은 가톨릭환경상 상금으로는 마을 공동 텃밭을 조성했다. 텃밭에서 수확한 작물은 공동 냉장고에 넣어 놓는다.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마음대로 가져갈 수 있다. 상추, 파, 오이, 가지, 고추 등 가정에서 꼭 필요한 채소 위주로 재배하는데 실컷 먹고도 남을 정도다.

조영호 대표는 “쌀 10kg과 돼지고기 2근만 있으면 한 달을 살 수 있다”고 농담처럼 말한다.

연령별, 취미별로 다양한 동아리 활동도 진행한다. 강사를 초빙해 풍물놀이와 시조창도 배우고, 50대 이상 여성들의 율동 모임인 ‘아모르 파티’ 등도 운영 중이다. 웬만한 수리도 마을 내에서 가능하다. ‘백가이버’(백화마을 맥가이버) 동아리 회원들이 바로 출동하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곳이니 이런저런 문제도 있을 법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다툼이 전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어 “근심 걱정 없고 마음 편하다”, “이웃끼리 잘 지낼 수 있다”, “여기가 천국이다” 등 마을 자랑이 끊이지 않았다.

마을 구석구석을 둘러 본 후 주교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조환길 대주교는 “황간면으로 오는 길에 산 밑에 특이하고 예쁜 마을이 보여 ‘저 마을은 무슨 마을이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곳이 바로 백화마을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조 대주교는 “자연 속에 살고 싶고 원천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는 누구나 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며 “공동체를 이루고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꿈같은 일이 현실로 보여지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앞으로 남은 내 생애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방문 소감을 밝혔다.

강우일 주교는 “생태에 대한 공동체 의식, 이런 마을이 많이 생기면 지속 가능한 지구가 될 것이라는 바람을 갖고 장소를 선정했다”며 “소비를 최소한으로 줄이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백화마을은 우리에게 희망의 지표가 된다”고 말했다.

장신호 주교는 “행복한 마을이라는 인상을 받고 떠난다”며 즉흥적으로 백화마을과 어울리는 가톨릭 성가 439번 ‘부드러운 주의 손이’를 함께 제창할 것을 제안했다.

“주여 나를 주님 포도밭에 성실한 농부가 되게 하소서”

백화마을에 마음과 목소리가 하나된 사랑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주교들이 마을 대표 조영호씨의 설명을 들으며 백화마을을 돌아보고 있다.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백화마을의 전경. 가구별로 태양광 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한다.

마을회관 내 무인 아나바다 장터. 모든 물건은 개당 1000원이며, 마을 주민은 물론 방문객들도 누구나 구입할 수 있다.

김현정 기자 sophiahj@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