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511) 우리의 영원한 본향(本鄕)을 꿈꾸며…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9-11-19 수정일 2019-11-19 발행일 2019-11-24 제 3171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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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10월 즈음, 본당 시니어 아카데미, 즉 노인 대학 어르신들과 함께 1박2일, 가을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첫째 날 일정 중에 ‘신단양 나루’에서 ‘청풍 나루’까지 대형 유람선을 타고 충주호를 건너가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그날은 평일인데도 날씨가 좋아서 그랬는지, 많은 사람들이 유람선 여행을 통해 가을의 정취를 느끼고자 했습니다.

우리 일행은 배 운행 시간 전에 선착장에 도착했고, 이내 곧 기다리던 유람선이 왔습니다. 우리는 유람선을 타자마자 객실로 가서 자리를 잡은 뒤 창가로 보이는 풍경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유람선 바깥 선상을 보니, 많은 분들이 나와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을 외쳤던 우리 일행이지만, 어르신들 한 분 한 분 객실 밖 선상을 향해 나가셨고, 나도 그렇게 따라 나갔습니다.

선상은 안전했을 뿐 아니라, 불어오는 상큼한 가을 바람과 천천히 달리는 배, 그리고 그 옆을 양 갈래로 나누어지는 물살의 움직임, 그리고 잔잔한 물출렁임이 무척 평온함을 주었습니다. 충주호 물은 맑았고, 주변에 펼쳐져 있는 가을 산세의 고즈넉한 풍경은 한 편의 운치 있는 가을 수채화였습니다.

어르신들은 선상에서 가을을 뒷 배경 삼아 사진을 찍으며 대화를 나누셨고, 나는 그 모습을 확인한 후 혼자 분위기를 잡고 ‘아, 좋다’라는 탄성을 연발했습니다. 그 때, 내 옆에 계시던 본당 어르신 한 분이 말을 건냈습니다.

“신부님, 이 배의 아랫 부분, 저 물 속에 평온했던 마을들이 물에 잠겨 있는데, 음…, 아직까지도 수몰되기 직전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까요?”

순간, ‘물속에 마을이 있었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말씀인지!’ 그래서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그 어르신께 물었습니다.

“이 물속에 마을이 있었어요?”

“아이, 우리 신부님, 모르시구나. 아마 이 충주호는 1978년에 공사를 시작해서 1985년에 충주 댐이 완성되었으니…. 음, 여러 마을들이 수몰이 됐고, 그래서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들었던 고향을 떠났어요.”

“제가 아주 어릴 때였네요. 댐을 만들면서 왜 마을을 수몰시켰나요?”

“아마도 수도원 지역의 잦은 홍수 때문에 그랬다고 해요. 그리고 수도원 상수도를 공급하려고 했다고 하는데, 아무튼 나도 그 옛날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여기에 자주 와서 수석도 줍고, 뭐 그랬던 추억이 있었어요.”

오랜 만에 나선 가을 여행과 충주호의 상큼한 가을바람에 눈에 보이는 세상 모두가 아름답게만 보였는데, 충주호에는 슬픈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댐 공사를 위해 인위적으로 수몰지역이 형성됐고, 그로 인해 강제로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도원 지역의 홍수를 막고, 그 지역의 상수원을 제공하기 위해서 이리도 조용한 시골 동네들이 그저 수몰되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 어르신 말씀을 듣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면서 ‘고향’이라는 단어를 묵상했습니다.

‘고향!’ 사실,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에게 고향이란 어디일까요! 신앙 선조들, 우리 순교자들이 꿈꾸었던 참된 본향은 어디였을까요! 그 곳은 다름 아닌, 하느님 계신 곳일테지요. 그런데 그 고향은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해서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으로 우리 모두는 영원의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로 그 천상 본향을 다시금 돌려주시고자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어, 영원한 구원을 약속 받았습니다.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묵상하다가 천상 본향을 그리워하는 내 마음을 찾게 되었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