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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복음화, 미래교회의 희망] 일본 도쿄 성 이냐시오본당의 ‘다문화와의 대화’

일본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9-12-03 수정일 2019-12-03 발행일 2019-12-08 제 3173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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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 국어로 묵주기도 바치지만… “우리 모두는 한 본당 신자”
이주노동자와 외국인 유학생 등 여러나라 출신들 본당공동체 이뤄
이주민과 친교 통해 경계 사라져 
언어권별 사무실 운영하는 등 공동체 배려하는 사목 펼쳐

삼중대화는 아시아라는 특수성 안에서 가난한 이들, 다양한 문화, 종교 전통이라는 세 가지 방면으로 대화를 지속하며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방법론이다. 아시아 내의 각 교회들은 어떻게 이 삼중대화를 구현해나가고 있을까? 이주민의 유입이 많은 나라 일본, 그 수도인 도쿄에서 가장 많은 이주민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도쿄대교구 성 이냐시오본당(고지마치본당(麹町教会), 주임 하나후사 료이치로 신부)을 찾아 다문화와의 대화를 실천하는 모습을 만났다.

11월 24일 도쿄대교구 성 이냐시오본당 신자들이 주일미사를 마치고 성모상 앞에서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다.

■ 수 천 명의 이주민이 어우러지는 본당

성당 마당에서는 미국 출신 신자들이 미사를 봉헌하고 돌아가는 신자들을 위해 커피를 나눴다. 식당 앞에서는 필리핀 출신 신자들이 성당을 찾은 이들을 위해 고향 전통 음식을 판매했고, 성당의 한쪽 공터에서는 베트남 출신 신자들이 베트남 음악을 틀어놓고 율동 연습에 한창이었다. 성당 교육관에 들어가니 일본어를 비롯한 여러 언어권의 청년들이 영어로 워크숍을 진행했고, 본당 신자 대표들이 모여 일본어로 본당평의회를 열고 있었다.

언뜻 어떤 국제행사의 프로그램처럼 보이지만, 매주일 본당에서 펼쳐지는 풍경이다. 본당에서는 7개 언어권의 미사가 봉헌된다. 일본어는 물론이고, 영어와 스페인어 미사는 매주 봉헌되고, 베트남어 미사는 월 2회, 인도네시아어와 폴란드어, 포르투갈어 미사는 각각 월 1회 봉헌된다. 도쿄는 일자리를 찾아온 이주노동자들도 많을 뿐 아니라 결혼이주민도 다수 거주하고 있는 도시다. 또한 성당이 위치 상 조치대학교와 붙어있어, 본당의 미사에는 외국인 유학생과 여행자들도 많이 찾는다. 그러다보니 매주 주일미사 참례자 5000여 명 중 절반 이상이 비일본어권 미사 참례자일 정도다. 그만큼 이주민이 많은 본당이자, 이주민들이 성당에서 기쁨을 찾는 곳이기도 하다.

가나에서 온 레이몬드 가수(51)씨는 “본당 공동체가 있어 신앙에 굉장히 큰 지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나라 출신의 신자들이 함께 주일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 “이주사목이 뭔가요?”

이렇게 수많은 이주민들이 함께하는 본당에서 이주사목을 하는 비결이 궁금했다. 본당 사목자, 본당평의회 평의원을 역임한 신자들에게 본당에서 어떻게 이주사목이 이뤄지고 있는지 묻자 돌아온 대답은 “이주민을 위해 특별히 하는 것이 없다”는 말이었다. ‘이주사목’이라는 말 자체를 낯설어 했다. 그제야 질문이 잘못됐음을 알았다. 이곳 본당 신자들에게는 ‘필리핀 사람’, ‘페루 사람’, ‘가나 사람’은 없었다. 그저 모두가 ‘우리 본당신자’였다.

물론 본당은 소통의 편의상 언어권별로 공동체를 이뤄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본당의 전체적인 사목에 있어서는 인종이나 언어의 구분을 두지 않았다. 본당은 본당사목을 자문하고, 주요 사목정책을 추진하는 본당사목평의회를 12명의 평의원으로 구성하고 있는데, 평의회에는 비일본어권 출신 신자들도 참여하고 있었다.

미국 출신으로 본당 평의회장도 역임한 바 있는 스미스 무쓰코(데레사·59)씨는 “무엇을 해주고,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어권에 관계없이 신자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라면서 “가족과도 같은 코이노니아(친교) 안에서, 예수님께서 늘 이웃을 위해 일하신 것처럼 공동체가 누군가를 위해 사랑을 실천하는 활동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원주민과 이주민의 경계가 없는 사목이 이뤄졌던 것은 아니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어권 신자들과 비일본어권 신자들의 교류는 개인적인 차원에만 머물러있었다. 그러나 본당 차원에서 언어권에 관계없이 전 신자가 함께하는 행사를 꾸준히 열어오면서 신자들의 인식이 변해왔다. 특히 연 2회 열리는 ‘7개 국어로 바치는 묵주기도’나 본당축제, 바자 등은 본당 모든 구성원이 기쁘게 참가하는 소중한 행사다.

본당 평의회장 쿠라 히로코(마리아·70)씨는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의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것은 어렵지만, 함께하는 경험이 쌓여가면서 점차 가까워질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신자들이 더욱 하나 되도록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원주민인 일본 출신 신자들도 이런 본당에서 나누는 이주민들과의 친교에서 신앙을 체득해나가고 있다. 영어권 신자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사쿠라 이즈미(58·마리아데레사)씨는 “이주민들과 많은 다름이 있지만,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임을 배우면서 이 친교에 가치를 느낀다”며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함께하는 모습 안에 하느님의 계획이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본당 보좌로 사목하고 있는 이상원 신부(예수회)는 “얼마 전 럭비 국제대회 중 일본 출신만이 아니라 한국이나 여러 외국 출신의 선수들이 함께 일본 대표로 출전하는 모습을 봤다”면서 “교회도 이렇게 럭비처럼 어느 나라 출신이냐가 아니라 하느님나라 대표로 살아야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성가연습을 하고 있는 성 이냐시오본당 베트남공동체 성가대.

■ 이주민을 위한 사목적 배려

본당은 원주민과 이주민을 차별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주민들이 본당 공동체에 더욱 잘 녹아들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사목을 펼치고 있다. 특히 본당 사무실 외에도 영어권, 스페인어권 신자를 위해 각각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각 사무실은 세례·견진·혼인성사 등의 업무를 비롯해, 각 언어권 공동체의 프로그램, 연중행사 등을 조율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스페인어권 신자 사목에 함께하고 있는 이베트 산체스 수녀(성체 선교 클라라 수녀회)는 “본당이 언어권별로 사무실을 마련해 준 것에 크게 감사하고 있다”면서 “사무실은 성사에 관한 사무업무뿐 아니라 영어권이나 스페인어권 신자들이 언제든 모일 수 있는 구심점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주민을 위한 공간의 나눔은 신자들을 위한 사무실에서 그치지 않는다. 본당은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본당 교육관에서 ‘일본어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주민들이 일본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 언어의 장벽이라는 것을 공감해서다.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눠 전문강사들을 섭외에 진행하는 ‘일본어 교실’에는 신자뿐 아니라 많은 비신자들도 참가하고 있다.

또한 본당은 예수회 일본관구와 함께 이주민을 위한 대안학교 설립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예수회 일본관구가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 대안학교 ‘크리스토레이’는 가난한 이주민·다문화가정 자녀들이 학교와 협약을 맺은 직장에 파견돼 일을 하면서 학업을 병행할 수 있는 학교다.

‘크리스토레이’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이성일 신부(예수회, 조치학원 중등교육 이사)는 “일본어를 교육하는 곳은 많지만, 일본어교육만으로는 이주민 2세들의 교육에 부족함이 많다”면서 “아직 설립을 위한 준비단계지만 성 이냐시오본당과도 함께 설립 작업을 해나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