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헬기조종사의 병영일기] 작은 일에 충실

이연세(요셉) 예비역 육군 대령·동서울대학교 교수
입력일 2020-07-21 수정일 2020-07-21 발행일 2020-07-26 제 3205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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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에서 머리를 깎으시나요? 요즘은 전통적인 이발소부터 미용실까지 다양해서 남자들이라면 한 번쯤 고민을 했을 겁니다.

저는 아내가 추천한 프랜차이즈 이발소를 이용했습니다. 그곳은 두어 평 남짓한 자그마한 이발소로 두 명의 중년 여성이 근무합니다.

처음에는 잘 몰랐지요. 몇 번 다니다 보니 A가 훨씬 낫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A는 일단 말씨부터 상냥하고 친절합니다. 머리를 깎을 때도 조심스럽고 세심하게 정성을 다합니다.

반면 B는 하기 싫은 일 억지로 하는 사람처럼 말투부터 툴툴거립니다. 바리캉을 댈 때도 툭툭 치며 처삼촌 뫼에 벌초하듯 건성건성 성의 없이 깎습니다. 내 돈을 주고 이발하면서도 기분이 상합니다. 손님에 대한 작은 배려인 말투와 행동을 조금만 바꾸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친절한 A에게 머리 깎을 확률이 반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1988년 봄, UH-1H 항공기 한 대가 판교 인근에서 불시착했습니다. 용산헬기장에서 귀빈을 태우고 대전으로 비행하던 중이었죠. 강남의 건물 숲을 얼마 지나지 않아 “펑” 소리와 함께 엔진이 꺼졌습니다. 조종사는 당황하지 않고 모내기를 준비하던 논으로 비상착륙을 시도해 인명 피해 없이 비상착륙에 성공했습니다. 조종사의 기지가 돋보이는 순간이었지요. 불행 중 다행이었고 천운이었습니다. 만약 서울 시내 상공에서 엔진이 꺼졌다면 생각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습니다.

상급부대에서는 사고조사팀을 구성해 엔진이 꺼진 이유에 대해 정밀 조사를 했습니다. 사고의 원인은 안타깝게도 작은 나사가 주범이었습니다. 정비사 한 명이 엔진 정비 중 근무를 나가며 분해한 나사를 엔진 한쪽 구석에 놓았지요. 다른 정비사가 엔진커버를 결합하며 엔진 내부에 나사가 있는 줄 모르고 다른 나사로 결합을 했습니다.

이 나사는 항공기가 비행하는 중 엔진 내부로 유입돼 엔진을 망가뜨렸습니다. 아주 작은 나사 하나가 항공기 엔진 아웃을 일으킨 원인이 된 것입니다. 만약 강남의 건물 밀집 상공에서 엔진이 꺼졌다면, 조종사가 비상조치를 잘못했더라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이 사고로 인해 정비팀은 징계를 받았고, 부대는 정비체계를 혁신적으로 보완했습니다.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라고 했습니다.(루카 16,10)

손톱만한 작은 나사 하나가 수백 명이 탑승한 항공기 추락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지요. “천하의 큰일도 반드시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는 노자의 말을 명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결국 머리 깎는 곳을 바꿨습니다. 싼 맛에 다니던 프랜차이즈 이발소에서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운영하는 이발소로…. 비록 비용은 더 들더라도 사람대접을 받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연세(요셉) 예비역 육군 대령·동서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