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간호장교 30년 전역 후 「엄마군인이 전하는 사랑의 백신」 펴낸 양은숙 예비역 중령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20-09-15 수정일 2020-09-16 발행일 2020-09-20 제 3212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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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군인의 사계절, 감사하고 따뜻한 기억으로 가득”
군의료 현장 속 생생한 이야기와 엄마군인으로서의 성장통 담아
“힘든 시기 위로의 원천은 신앙”
‘원고지에 한 단어 한 단어 눌러 쓴 시(詩) 같은 산문’. 30년 동안 입었던 간호장교 군복을 벗고 ‘폭력예방 통합교육’ 전문강사로, ‘5가지 사랑의 언어’ 인증강사로, 인성교육 지도사로, MBTI 강사로 그리고 이고그램 상담사로 제2의 인생을 부지런히 살고 있는 양은숙(마리아·51) 예비역 육군 중령이 최근 펴낸 「엄마군인이 전하는 사랑의 백신」(해드림출판사/349쪽/1만5000원)이 전하는 느낌이다.

수채화 같은 글이면서 어느 부분에서는 유치환의 시 ‘바위’가 연상될 만큼 군인으로서 묵묵히 감내했던 강철 같고 초인적인 장면들도 엿볼 수 있다. 생사를 가르는 치열한 의료 현장에서 신앙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했던 일면도 담겨 있다.

양은숙 예비역 중령이 1999년 서부 사하라 평화유지군 의료지원단 임무 수행 중 현지 어린이를 안아 주고 있다.양은숙 예비역 중령 제공

■ ‘엄마군인’과 ‘군인엄마’

양은숙 강사는 1988년 국군간호사관학교 생도 22기로 입학(2003년에 32기로 조정)해 꼭 30년을 군인으로 살다 2018년 6월 전역했다. 중령 정년을 3년가량 남겨 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직업 군인으로 복무 중인 남편(요셉) 건강이 안 좋아져 병간호가 필요한 시기를 겪으며 3주간 고심의 시간을 갖고 전역지원서를 제출했다. 대학생인 딸과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도 있었다.

책 제목에 등장하는 ‘엄마군인’은 엄마이면서 군인이라는 이중직함을 뜻하는 말로 썼다. 엄마 역할만 하기도 쉽지 않다고들 하는 세상에서 국가에 매인 군인 임무까지 수행하기가 얼마나 힘겨웠을지가 엄마군인이라는 단어에 숨어 있다.

‘군인엄마’는 군인 자녀를 둔 엄마다. 한국사회에서 아들을 둔 어머니들은 대부분 군인엄마로 2년 가까운 시간을 보낸다. 양 강사는 군문에 들어선 이래 22년을 두 자녀를 양육하는 ‘엄마군인’으로 살았다. 전역한 지금은 ‘군인엄마’로 산다. 아들이 지금 군복무 중이다.

「엄마군인이 전하는 사랑의 백신」에서 양 강사는 자신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것 세 가지를 꼽았다. 별명이 ‘유쾌한걸’과 ‘멋지군’인 두 자녀를 낳은 것, 육군사관학교 모범 생도였던 남편을 만나 결혼한 것, 간호사관학교에 들어간 것이다. 이 세 가지로부터 엄마군인과 군인엄마의 삶이 희로애락 속에서 펼쳐졌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최초로 군의료진이 민간병원에 투입됐을 당시 양은숙 예비역 중령이 방호복을 입고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 간호장교의 사계절, 2015년 메르스와 2020년 코로나19

양 강사는 「엄마군인이 전하는 사랑의 백신」에서 “엄마군인이기에 해야 했고 간호장교라서 할 수 있었던 일을 돌아보니, 감사하고 행복한 사랑의 기억이 그득합니다. 삶의 계절에서 지금 저는 어디쯤일까요?”라고 자문한다. 그리고 답한다.

‘설렘의 봄’은 간호사관학교 생도 시절과 소위, 중위 적응기다. ‘열정의 여름’은 양 강사가 2015년 메르스 군의료지원단을 이끌었던 생생한 기록이 말해 준다. 책에는 메르스 사태 당시 군의료진이 사상 최초로 민간병원(대전 대청병원)에 투입된 기간 중 긴박한 현장 상황을 담은 ‘난중일기’가 실려 있다. 양 강사는 자녀들에게는 “간호사관학교에 다녀온다”고 말하고 비장한 각오로 메르스 현장을 진두지휘했다. TV뉴스에 나온 양 강사를 알아본 딸이 울음을 터뜨렸던 일도 이제는 추억이 됐다. 올해 임관한 60기 간호장교 소위들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응현장에 투입되는 모습에 누구보다 가슴 뭉클하고 애틋했다.

‘고독한 가을’은 성장의 시간이다. 1999년 서부 사하라 PKO(평화유지군) 의료지원단 임무는 간호장교로서 값진 경험이었다. 군의료 현장에서 환자 장병들, 그 가족과 함께 아프면서 성장했다.

‘겨울’은 감사의 계절이다. 나무들이 뿌리에 에너지를 보존하며 봄을 준비하듯, 삶의 뿌리인 가족들과 양가 부모, 형제들에게 받은 사랑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양은숙 예비역 중령(맨 왼쪽)이 2017년 국군대구병원에서 근무하던 당시 간호장교 소위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신앙이란

양은숙 강사는 생도 2학년 때인 1989년 가을 세례를 받았다. 생도들 사이에서 ‘할머니 수녀님’으로 불리던 수도자가 양 강사를 성소자로 탐내기도 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의료현장을 지킨 간호장교 생활 30년을 돌아보면 가장 힘들 때 위로가 됐던 원천은 신앙이었다. 젊은 군인 아들의 시신 앞에서 오열하는 어머니를 마주 대할 때, 서부 사하라사막 한복판에 고독하게 섰을 때, 남편이 대대장 시절 피만 흘리지 않았다 뿐이지 실전 같은 훈련을 할 때 기도했다.

“요즘은 아침에 잠에서 깨면서 남편과 함께 하루를 감사기도로 시작하고 저녁 산책을 하면서 감사기도를 나눕니다.”

간호장교 생활 30년을 마치고 전역한 양은숙 예비역 중령은 최근 「엄마군인이 전하는 사랑의 백신」을 펴내고 “저의 길에서 받았던 그 사랑을 전해 드린다”고 말한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