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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이해인의 말」 발표한 이해인 수녀

정리 우세민 기자
입력일 2021-02-02 수정일 2021-02-03 발행일 2021-02-07 제 3231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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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내 삶의 힘… 바다의 마음으로 주님 찬미하며 살 것”
■ 「이해인의 말」은…
낭만적 시만 쓰는 수녀보다는
내적투쟁 이어온 수도자로서
살아온 여정 축약·정리한 책
■ 수도생활 57년
모든 것에서 담백해짐 느껴
미움보다는 용서할 수 있는
지금의 행복은 ‘물빛의 평화’
■ 작품활동 45년
저는 사랑과 기도의 순례자
세상과 수도원 잇는 다리로서
많은 분들에게 위로줬기를
■ 올해 우리는…
먼저 웃고, 사랑하고, 감사하자
감사 많이 할수록 행복도 커져
긍정적 태도로 사랑 실천하길

앞치마를 입고 ‘해인글방’에서 앉아 책을 보고 있는 이해인 수녀.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제공

수도자이자 시인인 이해인 수녀(클라우디아·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가 최근 재미 저널리스트 안희경씨와의 온라인 화상 인터뷰집 「이해인의 말」(이해인·안희경/308쪽/1만6500원/마음산책)을 펴냈다. 수도생활 57년 여정을 솔직한 언어로 담아낸 이 책에서 이 수녀는 좋은 삶과 관계에 대한 뛰어난 통찰을 보여준다.

가톨릭신문도 이해인 수녀와 ‘가깝고도 먼’ 대담을 진행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이 수녀는 부산 광안동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원에 있는 ‘해인글방’에서 본지 장병일(바오로) 편집국장과 온라인 화상 프로그램으로 대화를 나눴다. 아름다운 동백꽃을 들고 인사를 나눈 이 수녀는 이날 대담에서 “먼저 웃고, 먼저 사랑하고, 먼저 감사하자”는 새해 덕담을 건넸다.

대담 : 장병일 편집국장

일시 : 2021년 1월 28일

장소 : 온라인 화상 대담

「이해인의 말」 표지.
-장병일 편집국장(이하 장 국장) : 최근에 「이해인의 말」이라는 책이 출간됐습니다. 수녀님의 70여 년 삶을 돌아보면서 수도생활 57년, 작품활동 45년에 대해 솔직하게 말씀해주신 책입니다.

▲이해인 수녀(이하 이 수녀) : 삶을 정리할 시기가 됐습니다. 창작물과는 다른 의미로 생각과 삶을 정리하는 뜻에서 출판사의 기획을 받아들였습니다. 이해인 수녀에 대해 일종의 선입견을 깬다는 점에서 이 책의 또 다른 의미가 있어요. 예쁘고 낭만적이고 고운 시만 쓰는 수녀로 보시는 분들이 많은데, 이 책을 읽어보시면 이 수녀도 나름대로 내적투쟁을 해가면서 수도자로 50여 년 세월을 잘 버텼구나 하는 생각을 하시게 될 것 같아요. 제가 살아온 여정을 축약해서 정리해놓은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해 12월에 나온 책인데 얼마되지 않아 6쇄를 인쇄했어요. 종교를 넘어 많은 분들이 찾아 읽으시고 좋은 말씀 많이 보내주고 계십니다.

-장 국장 : 책을 펼치면서 맨 먼저 와닿은 글귀가 있습니다. 수도생활 50년을 하고 난 심정에 대해 “담백한 물빛의 평화를 느낀다”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습니다.

▲이 수녀 : 수도생활을 하면서 제 개인의 취향과 개성 같은 것들이 두루뭉술해지더라고요. 보편적이라고 할까요. 인간관과 종교관 등 모든 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순해지더군요. 죄를 지은 사람에게도 연민의 정이 느껴지는, 미움이 없어지고 누구라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자비심이랄까요? 그런 것을 물빛의 평화라고 표현했습니다. 제가 ‘평상심’이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데요. 매사에 흥분될 일이 거의 없고 모든 것에서 담백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느끼는 행복은 잔잔한 어떤 미풍 같은 그런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부족한 저 자신이 더 많이 보입니다. 이런 못난 나도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는 겸손이 있어야 수도생활을 할 수 있더라고요. 죽는 순간까지 못난 자신을 수용하고 사랑하면서 또 남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다가 하느님 품으로 가는 것이 수도생활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장 국장 : 수도생활에 대한 질문을 드리면서, 책 속에도 인용된 고(故)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라”는 글이 떠올랐습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 내용 중에 있는 말씀이지요. 이 말씀이 수녀님께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궁금합니다.

▲이 수녀 :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라”는 것이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습니다. 제 경우에는 정말 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찾아오십니다. 그런 다양한 빛깔의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예수님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진짜 환대, 즉 자기중심적 환대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내가 어떻게 하면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고 연구를 합니다. 그래야만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될 수 있겠죠. 가령 누가 절 만나러 온다고 하면 그분에 대해 생각하고, 무슨 대화를 할까, 어떤 선물을 주면 좋아할까 등 그분에게 맞춤형으로 계속 연구합니다.

-장 국장 : 수녀님의 이번 책에 고 김 추기경님과 고 법정 스님에 대한 사연이 소개돼 반가웠습니다. 수녀님께서는 이 어른들과의 인연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으셨는지, 저희에게도 좀 나눠주셨으면 합니다.

▲이 수녀 : 김 추기경님은 잎이 무성한 느티나무의 그늘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한달까요. 겸손하게 모든 이에게 먼저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서민적인 이미지가 깊게 다가왔어요. 병원에 입원했을 적에도 인간적인 말로 위로해주신 것이 크게 도움이 됐습니다.

법정 스님은 소나무를 연상하게 하고요. 스님에게서 사색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문학적인 면에서도 도반(道伴)으로서 영향을 받았지요.

2009년 봄 경기도 의왕시 성라자로마을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이해인 수녀와 고 박완서 작가.

-장 국장 : 1월 22일이 박완서 선생님 10주기였는데요. 박완서 선생님과의 추억도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수녀 : 1989년 서울 세계성체대회를 앞두고, 1988년 준비위원회 신심분과에 파견돼 명동에서 기도문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당시 세계성체대회 회보가 있었는데요. 첫 필자로 제가 박완서 선생님께 원고 청탁을 했습니다. 그때 사실 박완서 선생님 부군께서 많이 편찮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제 청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병실 바닥에서 원고를 써주셨어요. 그런 계기로 돌아가실 때까지 우정을 나눴죠.

-장 국장 : 최근 모 일간지에 수녀님께서 박완서 선생님 추모글을 쓰셨습니다. 그중에 “세상과 인간을 따스하게 감싸안는 애정, 자만에 빠지지 않고 ‘자기수련’으로 깨어 사는 겸손한 영성, 작가로서의 예리한 통찰력, 지혜, 열정을 선생님께 배울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라는 구절이 있더군요.

▲이 수녀 : 박완서 선생님의 그런 좋은 부분을 닮으려 했지요.

-장 국장 : 수녀님께서는 1976년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출간한 이후 45년 동안 수십 권의 시집과 산문집, 동화집을 발표하셨습니다. ‘해인글방’에서 탄생한 주옥같은 작품들은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이해인의 말」에는 “시인은 사제와 같고 예언자와 같고, 이름을 주는 사람”이라는 글귀가 있습니다. 이 문장은 수녀님께서 시인으로서 갖고 계신 사명감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수녀 : 시인을 통틀어 봤을 때 일반적으로 그런 역할을 한다는 뜻입니다. 저의 경우는, 수도자로서 비록 제한된 공간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수도원을 이어주는 하나의 다리 역할을 한다고 할까요? 제가 쓴 시는 보잘것없는 하나의 평범한 노래일 수 있지만, 그 시로 많은 분들이 위로받았다면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30~40년 동안 많은 분들로부터 받은 편지가 수십만 통이 있습니다. 저는 요즘 그걸 다시 정리하고 있는데요. 다시 읽으면서 계속 감동받고 있어요. 시인 수녀라는 이름으로 세상과 편지를 주고받는 ‘편지 수녀’가 됐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정말 문서선교의 역할을 해왔구나 하는 자긍심이 생깁니다.

-장 국장 : 그동안 작품활동을 해오시면서 꾸준히 전하신,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공통의 메시지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이 수녀 : 처음부터 의도하진 않았지만, 결국에는 ‘사랑과 기도’인 것 같습니다. 저는 ‘사랑과 기도의 순례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의 여행길을 가는 순례자로서, 일상의 평범함이 사랑으로 비범해지는 것이죠. 이 삶은 최종적으로 하느님 나라로 향하는 거죠.

저는 제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시인 수녀로 행복하게 살았다”라고 기억되면 그걸로 족해요. 제가 본의 아니게 이름이 나다 보니까 사람들이 절 많이 알게 됐잖아요. 그래서 아픈 경험도 했지만, 지금은 행복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됐죠.

-장 국장 :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많은 분들이 우울해하고 지쳐 있습니다.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이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위로와 당부의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 수녀 : 요즘처럼 힘든 시기일수록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막말 대신 상대를 배려하고 감싸안는 긍정적이고 따뜻한 말을 할 수 있도록 깨어있는 노력이 필요한 거 같아요.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 연결돼 있습니다. ‘함께’라는 공동체 의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많이 절감하게 됐잖아요. 그래서 저는 우리가 생활습관 안에서 흔히 하게 되는 ‘나 하나쯤 빠져도 돼’, ‘나 하나쯤 안 하는 건 어때’라는 생각을 ‘나 하나만이라도 이걸 해야지’ 하는 적극적 태도로 바꾸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긍정적인 태도로 우선적인 사랑의 선택을 하면 좋겠습니다.

-장 국장 : 아마도 올해는 우리 삶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수녀 : 평범한 삶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마음이야말로 삶을 아름답고 향기롭게 가꾸어가는 소중한 밑거름입니다. 감사는 나를 살게 하는 힘입니다. 감사를 많이 할수록 행복도 커진다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 그동안 감사를 소홀히 했습니다. 올해는 우리 모두 다시 새해를 맞으며 새롭게 다짐하면 좋겠습니다. “먼저 웃고, 먼저 사랑하고, 먼저 감사하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리하면 내 삶은 평범하지만 진주처럼 영롱한 한 편의 시가 될 것입니다.

-장 국장 : 얼마 전 수필 그림책도 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녀님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이 수녀 : 그림책 시리즈 7권 중 4권 「누구라도 문구점」, 「감사하면 할수록」, 「어린이와 함께 드리는 마음의 기도」, 「수녀 새」를 펴냈습니다. 앞으로 3권을 더 낼 예정이에요.

사실 수도자에게 ‘앞으로의 계획’이라는 말은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대신 제가 좋아하는 시편기도 중 한 구절 “주께서 이 마음을 넓혀 주시면 당신의 계명 길을 달려가리이다”(118,32)를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광안리 바다를 볼 때마다 이 시편기도를 외우면서 바다같은 마음으로 바다같은 하느님을 찬미하면서 바다가 되고 싶은 꿈을 꿉니다. 그것이 저의 바람이라면 바람입니다.

멀리 있는 하느님이 아니라 형제 안에 계신 하느님을 만나고, 제 동반자인 같이 사는 수녀님들에게 더 충실하면서, 소박하게 하루하루를 살고 싶습니다. 또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기 위해 하느님을 공경하면서 고통받는 이웃에게 마음을 넓혀 세상 모든 이웃을 내 가족으로 생각하는, 필명 ‘해인’(海仁)답게 살고 싶습니다.

-장 국장 : 오늘 수녀님과 함께한 대화를 통해 우리는 어쩌면 세상살이가 힘들고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기다리지 못하고, 나만 생각하는 생활을 해오지 않았나 반성하게 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해인 수녀(화면)와 본지 장병일 편집국장이 1월 28일 온라인 화상 대담을 하고 있다.

정리 우세민 기자 semin@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