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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장교의 병영일기] 주께서 함께 하시는 길 / 권영훈 중령

권영훈(레지나) 중령,국군수도병원 내과간호과장
입력일 2021-02-02 수정일 2021-02-02 발행일 2021-02-07 제 3231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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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이자 의료인인 저는 소위로 임관하면서 ‘아픈 이들에게 하느님의 온기를 전하는 간호장교가 되.어.주.겠.다’고 성모님께 약속했고, 어느덧 27년의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군(軍)이라는 환경은 늘 위험이 상주합니다.

제겐 잊을 수 없는 2008년 겨울, 응급환자를 후송하고 돌아오던 헬기가 추락하면서 함께 근무하던 군의관, 후배 간호장교, 의무병을 한 번에 잃었습니다. 상심과 분노가 커서 하느님을 원망했고 죄 없는 저들에게 왜 이토록 가혹하신지 따져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던 중 2010년 연평도 적 포격 도발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국군수도병원에서 근무하던 저는 응급실에서 TV를 통해 전해지는 실시간 연평도 포격 상황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이내 병원 전체가 비상 상황에 돌입해 병상을 비우고 수술실과 중환자실을 준비했고 곧이어 해군 의무부대에서 환자 규모와 함께 폭발 손상이 대부분인 최초 진단명이 전달되면서 의료진의 마음이 바싹 타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환자들이 밀려 들어왔을 때, 들것에 실려 들어오는 환자들의 비명과 다급한 목소리들, “제가 죽는 것인가요?”라고 외치는 환자, 다양한 응급 장비들의 알람 소리까지 응급실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됐습니다. 저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하느님, 제발 지옥과 같은 이곳에 저희와 함께 계셔 주세요’. 간밤의 긴박함에서 한 명의 환자도 잃지 않게 해 주신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의 자만심은 사라지고 나약한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었던 의료인으로서의 한계를 당신께 의탁하게 해 주십사 간청했습니다.

그 후로도 많은 환자를 만나 오고 있습니다. 훈련 중 갑작스레 심정지가 발생한 환자, 뱀에 물리거나 추락으로 크게 다친 환자, 마음의 고통과 싸우는 환자와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신음하는 환자들까지. 그때마다 하느님은 그들을 치유하시고 환자와 그 가족들, 의료진을 위로해 주십니다.

마음이 지칠 때면 저는 메어리 스티븐슨(Mary Stevenson)의 ‘모래 위의 발자국’이라는 시를 생각합니다. 인생의 마지막 장면이 비쳤을 때 한 사람이 모래 위의 발자국을 돌아보고 자기가 걸어온 길에 발자국이 한 쌍밖에 없는 때가 많다는 사실과 그때가 바로 자신의 인생에서는 가장 어렵고 슬픈 시기들이었다는 것에 실망하며 주님께 물었습니다. 제가 당신을 가장 필요로 했던 시기에 왜 저를 버리셨습니까. 그러자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버리지 않는다. 네 시련과 고난의 시절에 한 쌍의 발자국은 사랑하는 너를 업고 간 내 발자국이다”라고 말입니다.

* 권영훈 중령은 국군간호사관학교 제35기로 1995년 임관했다. 국군대구병원 정신과 선임간호장교, 육군3사관학교 병원장, 간호사관학교 교무처장 등을 거쳐 현재 국군수도병원 내과간호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권영훈(레지나) 중령,국군수도병원 내과간호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