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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기도하는 대통령 / 강주석 신부

강주석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입력일 2021-03-02 수정일 2021-03-02 발행일 2021-03-07 제 3234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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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그로미코(Andrei Gromyko)는 1957년부터 1985년까지 동서 냉전 시대에서 소련 외무장관을 지냈던 인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43년에 그로미코는 대사로 미국에 파견됐는데, 그를 임명했던 스탈린은 30대 초반의 젊은 외교관에게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 보라고 조언한다. 곧 본격화될 대결에 앞서 자신의 적수(敵手)를 제대로 알고 싶었던 무신론의 독재자는, 미국인들의 정신과 가치 체계를 이해하려면 목사들의 설교를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저술한 알렉시스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도 ‘합중국에 민주 공화정을 유지 시켜주는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로 종교를 꼽았다. 그가 둘러봤던 1830년대 미국은 인류 역사상 새로운 정치제도를 구현하고 있었는데, ‘새로운 민주주의’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프랑스의 젊은 학자는 우선 미국 사람들의 관습과 태도가 미국 민주정치를 가능하게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프로테스탄티즘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토크빌은 “합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권위는 종교적인 것이며 결과적으로 위선이 흔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아메리카에서보다도 그리스도교 신앙이 인간 정신에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곳도 이 세상에는 없다”라고 단언한다.

프로테스탄트가 주류라고 하는 미국이지만 인구의 23% 가량을 차지하는 가톨릭의 위상도 무시할 수는 없다. 브라질, 멕시코, 필리핀에 이어 미국은 전세계에서 가톨릭 신자가 네 번째로 많은 나라다. 이제 미국 역사에서 두 번째 가톨릭 신자 대통령이 된 바이든 행정부에는 독실한 신자들이 상당수 입각했다. 예를 들면 국방부 장관 로이드 오스틴은 이라크 주둔 당시 바이든의 장남인 보 바이든과 주일마다 함께 미사에 참례한 것으로 보도됐다. 보훈부 장관 데니스 맥도너의 경우에도 형제 가운데 두 명이 가톨릭 신부다.

지난 2월 4일 이뤄진 한미 정상의 첫 번째 전화 통화에서 미국 새 대통령은 자신과 문재인 대통령이 모두 가톨릭 신자라는 공통점으로 대화를 풀었다. 이어서 바이든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언급하자 문 대통령은 평화를 위한 교황님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선거 유세에서 정의와 평화에 관한 교황님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인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자신의 역할을 해야 하는 미국이 교황님들의 가르침인 사회교리를 존중하는 지도자를 갖게 된 것이다.

항상 묵주를 지니고 다니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의 새 대통령,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코드’가 맞는 한국의 신자 대통령이 한반도와 세상의 평화를 위해 함께 기도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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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석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