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꽃보다 사람 / 김경란

김경란(데레사) 소설가
입력일 2021-03-09 수정일 2021-03-10 발행일 2021-03-14 제 3235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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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가 끝났지만 그냥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감실 앞 첫 자리 주님의 ‘금총’이 쏟아진다는 그 자리에서 미사를 드리긴 했지만 속은 시끄러웠다. 감실 앞을 가로 막고 선 저 인간들, 반질거리는 입간판 안에 박혀있는 저 인간들 때문이었다. 신부님은 구역별로 제작한 저놈의 분심덩이를 일주일에 한 번씩 교체할 것이라고 했다. 왜 하필 주님을 모시고 있는 감실 앞인지. 몇 달은 족히 걸리겠구나 생각하니 짜증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 ‘예수님, 화나요. 저 사람들 좀 보세요. 성지순례 푯말을 앞세우고 있지만 기도 안 차요. 형제들은 술 한잔했습니다. 딱 그 몸짓이잖아요? 자매들도 그래요. 저 잘난 맛에 한껏 취한 것 같아요. 성인들도 저렇게 감실을 가리고 서 있진 못할 거예요. 당장 끄집어 내리고 싶어요. 화가 나요.’

뒤를 돌아보니 고백소에 불이 켜져 있었다. 이 시끄런 마음을 가라앉히고 미사도 한 번 더 드려야 할 것 같아. 벌떡 일어나 고백소로 향하면서 주임 신부님이면 차라리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님께도 할 말은 다 하는데 뭐, 그러나 막상 심장이 콩닥거렸다. 고백소엔 보좌 신부님이었다. 다행이었다. 신부님은 나에게 성체 조배를 30분 이상 하도록 보속을 주신 후, 자매님의 불편한 마음을 전해드리겠다고 하셨다. 고백소를 물러나와 내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신부님이 내어준 보속이 서서히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갑자기 찬바람이 휘익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주임 신부님이 내 곁을 순식간에 지나쳐 제단을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신부님의 수단자락이 찬바람을 일으킬 수도 있구나 생각했다. 신부님은 문제의 그 입간판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이리저리로 한참을 옮겨 다녔다. 그렇게 애쓰다 내려가시는 신부님. 처음 놓였던 그 자리에서 겨우 한두 뼘 정도 아래일 것 같았다. 수단자락의 찬바람이 더 차갑게 느껴졌다.

‘예수님, 보셨죠? 신부님이 왜 저러시죠? 예수님은 괜찮으세요? 좋으세요?’

“꽃보다 사람!” 귀를 의심했다. 어, 이 말씀은…, 기쁘고 떨리는 마음은 어찌 할 바를 몰랐다. ‘그런데 주님, 무슨 뜻이죠? 드라마 제목 아닌가요?’ 주님은 그 사람마다 수준에 맞는 말씀을 해주신다는 데 갑자기 울컥 했다. ‘주님, 주님은 지난날을 잊어주신다더니? 오늘 복음에도 또 그 말씀하셔놓고. 왜 드라마중독자였던 저의 과거를 기억나게 하시는 건데요? 지난날을 다 잊고 사는데, 왜 뜬금없이 이렇게 하시는 건데요?’

주님은 아무런 말씀도 하시지 않으셨지만 주님 자신의 마음을 느낄 수 있도록 은총을 부어주신 건 확실했다. ‘얘야, 나는 미사 때 너의 사제가 바친 그 봉헌기도가 참 좋았다.’

‘주님, 이번 주간은 탄벌 산호 구역 신자들을 봉헌합니다. 이 구역 모든 신자들 가정을 주님의 나자렛 성가정으로 변화시켜 주십시오.’

‘얘야, 꽃도 제단 위에 봉헌할 수 있는데 사람이 왜 안 된다는 거야? 사람은 우리 성삼위 하느님 모상대로 만들어진 특별한 존재야. 너희에게 선물한 자유의지가 바로 그 증거지. 결국 그것이 우리 성삼위 하느님의 발목을 잡은 거지만 말이야, 하느님의 사랑은 더 주지 못해 안타깝지 준 것을 후회하진 않는다. 마침내 나는 성부께로부터 너희의 그리스도로 파견되었고 하느님이지만 완전한 사람으로 이 세상에서 살았다. 그리고 나의 분신인 모든 인류를 위해, 너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바로 너를 위해, 희생제물이 되었지. 지금도 미사 안에서 나는 실제로 갈바리아 산의 그 십자가 희생 제물이 되어 피를 흘린다. 자녀들인 너희를 살리는 일에 무엇을 못하겠느냐. 미사 때마다 그토록 많은 피를 흘리고 있는데 어찌하여 내 피가 헛되고 헛될까. 너는 다만 내 마음과 일치해라.’ 뜨거운 불꽃이 피어올랐다. 눈가를 적시는 아픈 눈물. 주님, 나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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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란(데레사)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