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불안한 미래에 대한 확신 / 김주혜

김주혜(비비안나) 시인
입력일 2021-03-16 수정일 2021-03-17 발행일 2021-03-21 제 3236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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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제한지구 비닐하우스

혼자 사는 마리아 할머니는

지난세월 이야기만 꺼내면 신이난다.

자식 하나 낳아보지 못했으나

영감님과 함께 심은 은행나무는 해마다 잉태하여

지천에 깔린 자식들로 다복하다.

고대광실 스란치마 끌며 명동을 누볐으니

지금의 비닐하우스는 남은 생의 덤

매주 수요일이면 할머니의 꺼져가는 목소리도 힘을 얻는다.

행여 잊혀질까 두려워 꽁꽁 싸매둔 지난세월

풍성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으면

방문객인 나와 함께

장막을 젖히고 허리 굽혀 들어온 햇살과

내게 들려보낼 까만 봉지 안

은행알과 은달래, 비단냉이들도 귀쫑긋하는

사랑과 평화가 있는 곳.

- ‘은행나무 아래 비닐하우스 그집’ 중에서

이 시는 오래전, 레지오 활동으로 독거노인을 방문할 때의 느낌을 표현한 것이다. 개발제한지구 비닐하우스에, 사람이 그립고 말상대가 고픈 외롭게 혼자 사는 노인들을 일주일에 한 번 방문하여 대화상대가 되어 드렸다.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듣고 또 듣는 이야기지만 리액션도 크게 하며 방문교리도 겸하여 네 분 모두 세례를 받으셨다. 비록 보살핌이 없으면 지내기가 어려울지라도 그분들의 과거는 풍성하고 아름다운 무지갯빛이었으니 추억이 있는 한, 생은 아름답게 기억되는 모양이다.

현재 두 분은 이미 고인이 되셨고, 남은 두 분도 건강이 좋지 못하나 그분들에게 배운 게 너무나 많아 가끔 그립다. 생각할수록 세례의 축복으로 하느님을 영접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남은 생을 보내게 해드린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어 사회적 문화적 갈등은 물론, 노인 부양에 따른 도덕, 윤리의 붕괴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자녀들이 있어도 장성한 후엔 혼자 자란 것처럼 행동하니 결국 새로운 골칫거리 노인이 되어 혼자 살아가는 실정이 되고 있으니, 우리가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의 뜻대로 이웃을 돌아보고 산다면 분명 마지막 생은 아름다우리라.

일찍이 하느님께서는 늙은 아브라함에게 “고향과 가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이르는 거룩한 곳으로 가라”고 하셨다. 다 늙은 후에야 거룩한 곳으로 가라고 하셨으니 젊음보다 늙음을 더 중요시 여기신 것이 아닐까. 거룩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비로소 나를 바라보며 회개하는 시기,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우리에게 마련하신 그분의 깊은 뜻이 무엇일까. 이 팬데믹 시대는 결코 위기의 시기가 아니라 은총의 선물로 다가가 밝게 변화된 모습에서 새로운 우리,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희망을 찾게 되었으면 한다.

비닐하우스 할머니들은 서로 왕래도 하지 않던 사이였으나 신앙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 나눔을 갖는 모습에서 하느님이 원하신 거룩한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방문시 귀찮아하던 모습에서 기다리는 모습으로 바뀌고, 무엇이든 줘서 보내고 싶어하는 수피 같은 손등에서 잊혀졌던 나의 할머니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독거노인을 방문하면서 발견한 기쁨이 바로 나의 불안한 미래에 대한 확신이 선 계기가 되었으니 하느님께서는 그동안 우울했던 내 존재의 거처를 확실히 알려 주시기 위해 할머니들을 방문할 시기를 주신 것이니 이 얼마나 신비로운 계약인가.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주혜(비비안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