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기자 신자가 바칠 것은… / 김지영

김지영(이냐시오) 동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대우교수
입력일 2021-04-13 수정일 2021-04-13 발행일 2021-04-18 제 3240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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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를 받은 뒤 나는 한동안 ‘기자 신자의 도리는 어떤 것인지’ 감을 잡지 못했다. “신앙심도 초라하고 가진 것도 없는데, 무얼로 바치나” 이런 생각 속을 헤매고 있었다.

그러다 졸지에 경향신문사 교우회 회장직을 떠밀려 맡았고, 대부님인 서울신문 최홍운 선배의 권유로(실질적으론 강권) 가톨릭언론인회에 가입했다. 그리고는 언론인회가 주관하는 언론인 신앙학교의 강의를 듣다 ‘사회교리’를 접하고 눈이 번쩍 뜨였다.

인간존중과 공동체의 선이라는 사회교리의 지향점은 저널리즘적 가치관과 일치했던 것이다. 빈부 격차, 노동·여성·어린이·노인·장애인·난민 등 많은 약자들에 대한 인권침해와 차별, 폭력과 전쟁, 환경파괴에 이르기까지 현 세계의 문제들로부터 인간을 살려내자는 지침. 그것은 사원주주제 회사로 언론의 독립과 진보를 추구하는 경향신문의 노선과도 짝이 잘 맞았다.

나는 비로소 기자 신자로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회교리를 내 저널리즘의 기준으로 하고, 열심히 생각하고 취재하고 쓴다면 신자로서 도리도 어느 정도 하고 봉헌도 할 수 있겠구나.”

교회신문이 아닌 소속사 매체에 칼럼을 쓰면서, 교리나 신앙고백을 날 것 그대로 쓸 수는 없었다. 하지만 무엇을 주제로 쓰더라도 그 바탕은 사회교리에 대한 믿음으로 지탱했다. 논설위원으로 일할 때에는 사무실 책상에 몇 가지의 사회교리 책을 비치해두었다. 논설주제를 정하는 회의가 열리기 전, 나는 주제와 함께 발제의 논거를 준비하면서 늘 사회교리 책을 참고했다.

내가 발제하고 썼던 주제 중 ‘사형제 폐지’는 경향신문으로서도 사설로는 처음 게재했던 것이다. 사형제에 대해 나는, 그 제도의 장단점을 비교해보기 오래 전에 성경의 말씀 한마디를 접하고 진작 ‘반대’쪽으로 심증이 굳어져있었다. “하느님은 죄인의 죽음을 바라지 않으시며 회개를 바라신다”는 구절이다.

그렇듯 내 마음속에서는 ‘사형제’라는 주제가 한쪽으로 정리돼 있었고 미리 사회교리 서적도 참고하며 제안의 논거를 머릿속에 갖추어 두었기 때문에 차근차근 설명하면 쉽게 결말이 날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오랜 시간동안 논설위원들 간에 찬반토론이 치열하게 벌어져 생각들의 많은 차이에 새삼 놀랐던 적이 있다.

또 사회교리가 진보적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경향신문과 짝이 잘 맞긴 했지만 몇몇 분야의 지침은 경향신문의 논조와 상치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생명윤리’가 대표적이다. 생명존중에 대한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사회교리나 경향신문과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낙태의 문제에서는 달랐다. 우리 교회는 수태하는 순간부터 엄연한 생명으로 보고 낙태자체를 금기하고 있다. 그러나 경향신문 구성원들 중엔 다른 진보적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자기신체에 대한 권리(My body, My choice)를 중시하는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럴 때면 속으로 갈등이 심했다. 믿는 교리를 어기며 사설을 쓸 수도 없고 해서 필자 자격을 사양하곤 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서거하셨을 때의 일이다(2005년 4월). 장례기간 동안 신문과 방송을 비롯해 국내 대부분의 매체들은 연일 대서특필을 했다. 매체들이 하루에 내보내는 기사의 양만해도 엄청났다.

문제는 천주교 용어를 저마다 달리 표현하는 것이었다. 가령 ‘고해성사’를 ‘고백성사’로, ‘세례명’을 ‘본명’으로 표현하는 식이었다. 신부님을 자문역으로 모셔다가 일일이 바로 잡으며 정확한 제작을 하는 매체도 있었다.

그때 “이런 큰 일이 잇따라 있을 텐데… 혼동하기 쉬운 천주교 용어들을 골라 책자로 만들어 보도매체들에 배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총무였던 김민수 신부님께 건의를 했고 곧 김 신부님과 서울신문의 임영숙·최홍운 선배, 나, 그리고 위원회의 이진아 간사 등으로 팀이 꾸려졌다.

우리는 명동대성당 구내의 방 한 칸을 제공받아 한동안 매주 주일 작업을 했다. “사전을 만드는 일이 이래서 어렵다는 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기존의 여러 가지 천주교 용어집을 참고했지만 제작 원칙을 만드는 데에만 한참 시간이 걸렸다. 용어해설 외에 천주교 상식에 대한 설명과 사진ㆍ그래프 등의 자료도 첨부했다. 오랜 작업과 검토, 주교회의의 감수 등을 거쳐 2011년 ‘미디어 종사자를 위한 천주교 용어자료집’이 출간됐다.

그때엔 ‘기자 신자가 가진 것으로 바친 듯한’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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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이냐시오) 동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대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