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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신앙, 깊어가는 믿음] (3) 신앙심 깊지 않은데 신앙 물려줄 수 있을까요?

조재연 신부(햇살사목센터 소장)
입력일 2021-04-20 수정일 2021-04-20 발행일 2021-04-25 제 3241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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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전수, 부모만 하는 것 아냐
자녀들이 교회 안에서 익히도록
공동체 형제자매가 공동 노력 
천상교회도 성인 전구로 함께해

기도로 연결된 천상교회와 지상교회의 도움으로, 신앙 전수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뤄지게 된다. 그래픽 정희선

“저는 20대 때 친구를 통해 천주교 세례를 받았어요. 이후에 특별한 교육을 받거나 공부한 것도 없습니다. 주일미사를 빠지지 않고 참례하고, 아이를 주일학교에 보내는 정도가 제 신앙생활의 전부예요. 자녀에게 신앙을 물려주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내가 어떻게 나도 잘 모르는 신앙을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요.”

많은 신자분들이 자신의 신앙이 깊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겸손의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때론 나약한 신앙을 스스로 자책하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볼 때 사목자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자책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더 깊게 하기보다, 하느님 앞에 서는 것을 어려워하고 주저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제가 젊은 신부였을 때도 비슷한 고민을 했습니다. 강론을 준비하면서 ‘내가 잘 깨닫지도 못하고 잘 살아내지도 못하는 말씀을 강론에 담아도 되는 것일까?’ 하는 갈등이 제 마음 안에 있었습니다. 그때 제 양성자이셨던 한 신부님은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신부님. 사제가 예수님 말씀을 잘 살지 못해도 신자들에게 그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강론은 우리가 살고 있는 것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가르침, 교회의 축적된 보고를 신자들에게 나누는 장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강론하는 사제에게는 중요한 책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가르침을 전하면서 비록 그 내용을 자신이 실천하고 있지 못하더라도 강론 이후에 그 말씀을 살아내려고 애쓰면서 삶 안에서 그 말씀을 채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신부님의 격려로 강론을 하면서 종종 갖게 되었던 자책과 갈등에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비록 제가 잘 살아내지 못해도 교회의 가르침, 교회의 이야기를 자신있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저를 격려해주신 신부님은 후에 프랑스 생드니교구의 주교를 지내신 고(故) 오영진 신부님(올리비에 드 베랑제)입니다. 부족한 나의 삶을 넘어 교회의 가르침을 전하고, 전하는 순간부터 그 말씀을 채워가라는 오영진 주교님의 격려와 초대를 신앙을 이어주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부모들에게 나누고 싶습니다.

신부님께서 해주신 격려의 바탕에는 사실 중요한 교회의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톨릭 신앙이 공동체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가톨릭 신앙은 나 혼자의 개별적인 신앙을 넘어 본질적으로는 교회 공동체 형제자매들의 신앙의 증거와 케리그마(kerygma)라고 하는 복음 선포를 통해서 완성되는 공동체 신앙입니다. 이러한 공동체 신앙을 지닌 가톨릭교회는 많은 순교자, 증거자, 복자, 성인 그리고 충실한 신자들의 피와 땀으로 2000년 동안 축적된 ‘신앙의 유산’(Fidei Depositium)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는 세례를 통해 가톨릭교회 공동체에 입문함으로써 이 ‘신앙의 유산’을 넝쿨째 선물로 받게 되었습니다. “예, 믿습니다”라는 고백을 통해서, 개인의 역사가 위대한 성인들과의 통공(communio)의 신비 안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의 연약한 기도는 성인들의 기도와 연결되고, 우리의 작은 신앙 증언은 순교자들의 증거와 연결됩니다. 천상교회의 성인들의 전구가 늘 우리와 함께 있고, 지상교회의 순례자들인 신자들의 기도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홀로 있지 않습니다.

천상교회와 지상교회는 이처럼 우리를 지지하고 격려하며, 더 나아가 우리가 교회로부터 받은 소중한 신앙의 유산을 세상과 우리의 다음 세대에 전하러 나가도록 독려합니다. 우리 각자의 용기있는 작은 시작에 교회의 도움이 더해질 때, 이 신앙의 유산은 땅속에 묻혀있지 않고 이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계속해서 더욱 풍요로운 보화가 되어 전달될 것입니다.

그러니 부족한 대로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며 신앙을 물려주십시오. 신앙을 이어주는 것은 소포 꾸러미를 전달하듯 교회의 진리와 가르침 보따리를 전달하는 것(tradita)이 아니라, 살아있는 교회의 삶 안에서 능동적으로,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며 익히게 하는 것(traditio)입니다. 하느님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씩 나아가는 부모들의 모습을 자녀들이 보면서 우리 신앙은 다음 세대로 전해질 것입니다. 그렇게 함께 살며 보고 배운 공동체 신앙은 우리 아이들의 머리(지식)와 가슴(마음), 의지(실천)를 통해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의 아이들, 여러분의 자녀들이 우리가 바치는 작은 기도를 통해서 천상교회와 지상교회가 연결된다는 그 신비를 알아챌 수 있는, 그 어느 순간으로 초대되기를 기대합니다.

※자녀, 손자녀들의 신앙 이어주기에 어려움을 겪는 부모, 조부모들은 이메일로 사연을 보내주시면, 지면을 통해서 답하겠습니다.

이메일 : hatsal94@hanmail.net

조재연 신부(햇살사목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