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제자, 되어가는 사람

임숙희(레지나) 엔아르케성경삶연구소 소장
입력일 2021-04-27 수정일 2021-04-28 발행일 2021-05-02 제 3242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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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5주일
제1독서(사도 9,26-31) 제2독서(1요한 3,18-24) 복음(요한 15,1-8)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 있듯,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 안에 머물고
진정으로 노력하면, 그리스도를 닮은 사랑의 열매 맺을 수 있는 것

“인간의 보편적 소명은 만년 학생이자 평생 학습자가 되는 것이다.”(종교교육학자 토마스 그룸)

며칠 전 여호수아기를 읽기 시작했는데 “여러분이 전에 이 길을 가 본 적이 없으니, 그렇게 해야 갈 길을 알 수 있을 것이오”(여호 3,4)라는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여호수아가 요르단 강을 건너며 백성들에게 계약 궤를 따라가라고 하는 맥락입니다. 지난주 “나는 착한 목자”라고 하신 예수님은 오늘은 “나는 참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말하며 그분 뒤, 그분 옆도 아니고 그분 안에 머물라고 가르칩니다.

■ 복음의 맥락

요한 15장 1-8절이 속한 15-16장은 13-14장 주제인 ‘사랑과 친교’라는 같은 주제를 더 심오하게 확장시킵니다. 영광스럽게 되신 주님(요한 13,31)은 그분께 매달리고,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 말씀을 지키는 사람들과 그분 사이의 심오한 일치에 대해서 말합니다.(14장)

이 일치를 더욱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포도나무와 가지라는 비유를 사용하십니다. 포도나무와 가지는 단일한 식물이며 같은 수액을, 같은 열매를 맺습니다. 최후 만찬이라는 상황, 향기롭고 맑은 포도주를 기억하게 하는 포도나무 이미지는 성체성사를 암시합니다. 그분 살을 먹고 그분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주님이 그 분에 ‘머물고’ 그는 주님 안에 머물기 때문입니다.(요한 6,54-58)

■ 예수님 안에 머문다는 것은?

요한 15장 4-8절에서 ‘머물다’(메네인)라는 말이 여덟 번이나 나오는데 이 본문의 핵심 주제입니다. ‘머물다’는 요한이 즐겨 사용하는 동사로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표현합니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가 보이듯이 가시적인 인격체로서 예수님과 맺는 관계에만 제한되지 않고 부활한 분,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고, 곧 성령으로서 우리 안에 존재하는 분과 맺는 관계를 가리킵니다.

영국 시인 테니슨은 그가 쓴 ‘더 높은 범신론’(The Higher Pantheism)이라는 시에서 이 점을 묘사합니다. “당신은 그분께 말하라. 그분은 들으시기 때문이다. 또 영과 영은 만날 수 있다. 그분은 숨결보다 가까이 계시며 손과 발보다 더욱 가까이 계시다.”

“예수님 안에 머물다”라는 말은 경이롭고 신비롭습니다. 무슨 의미인지는 살아가면서 되새겨야 하는 말입니다. 설명이 아니라 체험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말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 등장하는 사도 바오로는 그의 서간에서 ‘그리스도 안에’를 후렴구처럼 되풀이하는데 요한의 ‘예수님 안에 머문다’에 상응하는 표현입니다.

바오로와 요한은 같은 체험을 다르게 전달합니다. ‘그리스도 안에’라는 말은 바오로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부르심을 받고 로마 교외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할 때까지 그의 그리스도 체험의 중심이자 생명, 그의 신앙을 요약한 표현입니다. 바오로는 이 체험을 전달하기 위해 여러 가지 표상을 사용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로마서 6장에 나오는 세례입니다.

세례는 온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것입니다. 바오로는 신앙이 인간을 철저히 변화시킨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2코린 5,17)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 있듯이 한 몸이 되는 것,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갈라 2,20)이라고 말하는 것,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온전히 내 삶을 이끌어가도록 그분의 힘에, 성령의 인도에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문다는 것은 그분께서 우리에게 준 성령으로 알고 있습니다.(1요한 3,24)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콘)

■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머무는 것의 결과로서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습니다. 몇 년 동안 블루베리 농사를 같이 하면서 농부인 하느님이 인간을 위해 일하는 방식에 대해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블루베리 나무인데도 가지치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열매의 크기와 당도가 확연히 달라집니다.

가지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인 삶을 진정하게 살아 내는 노력과 관련됩니다. 신앙은 하느님이 거저 주는 은총이지만 인간의 응답이 필요합니다. 첫째, 열매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간직해야 할 덕목, 성품을 가리킵니다. 열매는 가시적인 행위로 드러날 수도 있지만 그 전에 먼저 성품으로 드러납니다.

제자라는 말의 의미는 ‘배우는 사람’인데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제자직의 첫째 요건입니다. 함께 있으며, 그분 말씀을 듣고 마음에 간직하며, 말씀을 삶에 적용하고 실천해 보며 점점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 하느님 자녀에 합당한 성품으로 바뀌어 갑니다. 습관화된 신앙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우리 안에 빚어 갑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맺을 수 있는 열매들이 다양한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성령의 열매 가운데 첫 번째도 사랑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전서 13장에서 모든 은사의 절정은 아가페, 즉 사랑, 순수하고 절대적인 자기 증여라고 말합니다. 바오로는 이 사랑의 찬가에서 온갖 영적인 덕, 심지어는 자기 재산과 목숨마저 내어줄 정도의 일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는 사람에 대해 묘사합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영혼이며 일련의 덕을 탄생시킵니다. 인내, 아량, 선, 겸손, 비애착, 관대함, 존중, 용서, 정의, 진리, 일관성, 희망…. 정말 사랑이 우리 안에서 스러져 버리면 이 고귀한 덕들도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사랑에서 출발하는 덕스러운 삶은 그가 그리스도의 제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걸어가고 있다는 것, 그리스도에게서 항상 배우고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의 표징입니다. 그런 삶은 사도직과 선교에서 좋은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복음은 그리스도교 입문 예식 때도 사용되는데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교회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정체성을 말해 줍니다. 제자는 완성품이 아니라 ‘되어 가는 사람’, “너희는 나 없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는 것을 세월이 흐를수록 절실히 체험하는 사람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도처에서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시기에 하느님과 예수님은 우리 개인, 그리고 교회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함께 많은 일을 하기 기대하고, 또 할 수 있다고 말하고, 할 수 있는 힘도 줍니다. 아멘!

임숙희(레지나) 엔아르케성경삶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