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582) 자연과 나 사이의 경계 (상)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1-04-27 수정일 2021-04-29 발행일 2021-05-02 제 3242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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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에서 살아보니, 개갑장터순교성지와 심원공소 주변에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이 구석구석에 숨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연히 그런 장면을 마주치면 먼저 마음에 담고, 그리곤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 평소 잘 아는 사진작가에게 그 사진을 전송합니다. 제가 찍은 장면을 보신 사진작가는 두 차례 이곳 성지를 방문해 직접 다양한 풍광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던 아침, 사진작가가 내게 전화를 했습니다.

“신부님, 오늘 거기 가서 사진 좀 찍을게요. 성지와 주변의 겨울 사진, 특히 눈 오는 성지의 모습을 찍어 두려고요. 새벽 동틀 무렵에 사진이 잘 나오기에, 성지에서 하루를 묵은 다음 새벽에도 작업을 해 볼까 합니다.”

고창의 겨울 풍경을 전문가의 손으로 담을 수 있으니, 너무나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그날 점심 즈음 사진작가는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오셨고, 우리는 고창 터미널에서 만나 공소로 이동한 후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오후부터 나는 운전을 했고, 사진작가는 자신의 영감에 따라 고창 지역을 두루두루 다니며 곳곳의 겨울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오후에 잠시 멈췄던 눈은 저녁 즈음부터 또 다시 ‘펑-펑’ 내렸고, 덕분에 진짜 눈 내리는 고창의 겨울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늦은 저녁까지 사진 촬영 작업을 하고서야 성지 사무실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나는 사진작가의 잠자리를 봐 드리고 밤이 되어 공소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날 눈이 너무도 많이 와서 공소까지 차량으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1시간 넘게 운전해서야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공소에서 미사를 봉헌한 후 성지로 갔습니다. 가는 도중에 보니 밤새 내린 눈 덕분에 주변 풍경은 그야말로 ‘예술’이었습니다. 성지에 도착해보니 사진작가는 이미 밖으로 나와 사진을 찍고 계셨고 나는 아침식사를 준비했습니다. 사진작가는 한참 후에야 식사를 하러 성지 사무실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나, 온 몸이 땀과 눈으로 뒤범벅된 모습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 했습니다.

아침식사를 한 후 최여겸 마티아 복자가 순교 전날 마지막 밤을 보낸 무장읍성에 가서 사진을 찍고 주변을 탐색하는데, 갑자기 마음속의 욕심(?)이 발동했습니다. 눈 내린 갯벌의 풍경이 생각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작가에게 기가 막힌 절경이 있다고 꼬드겨(?) 차를 몰고 공소 근처 갯벌로 갔습니다. 도착해보니 예상대로 눈이 내린 뒤의 절경, 즉 흰 눈 가득 쌓인 하얀 갯벌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는, 하느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만 경계를 넘어 버렸습니다.

사실 예전에도 갯벌 안까지 차를 몰고 들어간 적이 있었기에 그날도 차를 몰고 갯벌 안에 들어갔고, 작가는 내려서 주변 풍경 사진을 찍었습니다. 나는 멋진 작품이 나오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런 다음 갯벌에서 차를 돌리려는데 차바퀴가 그만 갯벌 속에 빠진 겁니다. 차를 움직이려 아무리 노력해도 헛바퀴만 돌뿐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밀물 때였지만, 차가 빠진 지점은 물이 들어와도 별 문제가 없는 곳이라 마음은 놓였지만, 차가 꼼짝도 하지 않아 황급히 보험 회사에 전화를 했습니다.

보험 회사에서는 차량 번호를 말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순간 그 번호가 기억나지 않아 다시 갯벌 안으로 뛰어가 확인하고서야 번호를 불러 줄 수 있었습니다. 눈이 온 후라 날씨는 무척 추웠는데, 그 추위를 느낄 새도 없었습니다. 잠시 후 보험회사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를 확인하는 전화가 왔고, 나는 차가 갯벌에 빠져 바퀴가 헛돈다고 말했더니 직원 분은 난감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저희는 갯벌 안까지 들어갈 수는 없어요. 보통 갯벌에 차가 빠지게 되면 트랙터를 불러 갯벌에 빠진 차를 빼거든요. 죄송합니다만, 인근에서 트랙터 가진 분을 찾아보시는 것이 더 빠를 것 같아요.”(다음 호에 계속)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