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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노년기의 부모님과 함께하는 사랑의 기쁨 / 이미영

이미영(우리신학연구소 소장)
입력일 2021-05-03 수정일 2021-05-04 발행일 2021-05-09 제 3244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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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이다 보니,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의 성장뿐 아니라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어르신의 삶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팔순이 넘으신 시어머니는 팬데믹 상황에서 본당 노인대학도 멈추고 동네 노인정도 문을 닫으면서 홀로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 부쩍 더 쇠약해지셨습니다.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고,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 곳은 늘어나며, 점점 할 수 있는 일들이 줄어드는 노화의 과정이 아주 서글프신 듯 푸념이 느셨습니다. 이렇게 약해지다가 머지않아 다른 이의 도움 없이 움직이지 못하게 되진 않을까 계속 걱정이십니다.

이제 살 만큼 살아 오늘 죽어도 아쉽지 않다는 시어머니의 말씀에, 아이들은 지금 당장 할머니가 돌아가시기라도 할 듯 금세 울먹울먹 울음을 터뜨립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은 조금씩 머리가 굵어져서 유교적 가치관이 깊이 뿌리내린 할머니의 생각과 기준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툴툴대면서도, 할머니가 이 세상에 안 계시는 순간을 떠올리기만 해도 큰 슬픔이 밀려오나 봅니다. 부모들도 요즘 10대 청소년과 소통하기 쉽지 않은데,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국전쟁 등 민족의 가장 어려운 시기를 겪으며 힘들게 살아오신 할머니 세대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서로를 향한 사랑만큼은 그 어떤 차이와 다름도 넘어섭니다.

1인, 2인 가구가 전체 인구의 60%나 차지하는 한국 사회에서, 3대가 함께 모여 산다는 것이 저에게는 큰 은총이요 축복이라고 여겨집니다. 요즘 세상에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다니 대단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상 시어머니께서 저희를 ‘데리고’ 살아주신 덕분에 남편이나 저나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도 큰 어려움이나 걱정 없이 사회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집안에 어른이 계시기에 온 가족이 좀 더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움직이게 되고, 음식이나 물건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아껴 쓰는 생활 습관이 몸에 배기도 했습니다. 시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배운 삶의 지혜가 저나 아이들에게는 큰 유산입니다.

한편, 같이 살지 않아도 늘 온 가족을 기억하며 기도하시는 친정어머니는 저희에게 신앙의 기쁨을 전해주고 계십니다. 어머니는 이른 새벽 눈을 뜨자마자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시고, 칠순이 넘으셨어도 여전히 본당 구역장 활동으로 온종일 바쁘게 움직이십니다. 드러나지 않게 어려운 이웃을 챙기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거나 무언가 좋은 것이 있으면 늘 이웃과 함께 나누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저는 신앙의 삶을 배우곤 합니다. 사소한 일상과 작은 행복에도 늘 하느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는 어머니의 기도와 신앙 고백은 온 가족에게 주시는 큰 신앙의 증거요 유산입니다.

올해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Amoris laetitia)」 반포 5주년을 맞아 ‘사랑의 기쁨인 가정의 해’를 선포하여, 사랑의 기쁨이 충만한 가정을 일구도록 노력하자고 권하셨습니다.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은 할머니, 할아버지는 각 가정의 ‘살아 있는 기억’이며 신앙의 가치를 유산을 물려주는 ‘신앙의 증거자’라며, 노인들의 삶의 이야기와 지혜가 세대를 거쳐 자손들에게 전달되도록 하고, 젊은이와 노인이 서로를 끌어안는 기쁨으로 ‘버리는’ 문화에 맞서라고 요청합니다(191-193항 참조). 교황님은 자본주의가 심화될수록 젊은이들은 경쟁에 내몰리고 노인들은 쓸모없다고 버려진다며, 노인 세대와 젊은 세대가 함께 동맹을 맺고 능력과 효율만을 기준으로 모든 가치를 판단하는 세상의 논리에 맞서라고 자주 말씀하십니다.

아프고 병드는 노년기의 삶이 비참한 고통이 아니라, 생로병사의 자연스러운 삶의 여정으로서 존중과 기쁨으로 채워지면 좋겠습니다. 부모님의 삶이 그렇게 존중받을 때 저의 삶도 존중받을 수 있고, 또 어린 자녀 세대들도 삶의 존엄을 배우고 새길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어버이날을 맞아 노년기를 보내는 부모님들께 사랑과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오래도록 건강히 사랑의 기쁨을 나누는 가정을 지혜롭게 이끌어주시길 하느님께 기도드립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미영(우리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