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583) 자연과 나 사이의 경계(하)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1-05-03 수정일 2021-05-04 발행일 2021-05-09 제 3244호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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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갯벌에 빠진 차는 빼내 줄 수 없다는 보험 회사 직원의 말이 이해는 됐습니다. 그래서 다급한 마음에 공소 식구들을 통해 마을 주민 중 조개잡이를 나가는 트랙터를 섭외해 보려고 하는데, 또 다시 보험 회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고객님. 차량이 갯벌 어느 지점에 빠져 있는지를 사진으로 찍어 보내 주세요.”

나는 그 말을 듣자, 왠지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갯벌에 빠진 차량의 상태를 찍어 문자 메시지에 첨부해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감사하게도 잠시 후, ‘출동하겠다’는 문자 메시지가 왔습니다. ‘휴….’ 안도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읍내에서 오는 것이라 갯벌까지 20분 정도 소요될 거란 생각에, 눈보라가 휘날리는 갯벌 앞에서 무작정 기다릴 수 없어서 갯벌 진입로 옆 온기 없는 휴게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휴게소 창밖, 갯벌 진입로 옆에 평소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현수막 문구가 그날따라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갯벌에 무단으로 들어가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정말 트럭 한 대가 갯벌 진입로에 와서 멈춰 섰습니다. 나는 속으로 ‘혹시 저분이 마을의 어촌계원인가! 갯벌 안에 차가 빠져있는 걸 보고 경찰에 신고하면 어쩌지!’ 그래서 내가 먼저 운전석으로 다가가서 어떻게 오셨는지를 물어보려 했더니, 그분이 먼저 창문을 내리며, ‘지나가다 우연히 들렸다’고 말하는 겁니다. 또 다시 ‘휴….’

십여 분 후, 견인차 차 한 대가 왔고, 차에서 내린 기사는 갯벌에 빠진 차의 위치를 확인하더니, 신중하게 갯벌의 끝자락에 접근했습니다. 그리고 상황을 살피더니, 나를 보며 ‘차를 갯벌 밖으로 빼낼 수 있겠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기사는 갯벌에 빠진 차량 뒷부분과 견인차를 연결했고, 나에겐 차에 가서 시동을 걸라며 자신의 지시를 따를 것을 주문했습니다. 이어서 기사는 큰 소리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말을 했고,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그러자 바퀴가 헛돌아 갯벌 속으로 들어가던 차량이 마침내 갯벌 밖으로 간신히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없는 갯벌에서 아무도 모르게 차를 갯벌 밖으로 빼내는 중인데, 사진작가는 이 모든 장면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습니다. 마치 중요한 자료를 남기려는 듯 말입니다. 나는 속으로 ‘이런 장면은 안 찍어도 되는데…’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암튼 견인차 기사에게 감사 인사를 드렸더니, 그분 또한 미소를 지으며 유유히 다음 출동 지점으로 가셨습니다.

밤새 눈이 내린 날 아침, 흰 눈으로 덮인 갯벌의 멋진 풍경을 보고 그저 감상하며 멀리 서서 사진을 찍으면 될 터인데, 욕심이 나서 갯벌 안으로 들어가 – 결국 자연과 나 사이의 경계를 넘어 버렸습니다. 자연의 속성을 무시한 그때, 욕심이 화근이 되어 차는 갯벌에 빠졌고 차를 빼느라 그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의 일은 지금도 제 성찰의 주제입니다. 천지가 창조되던 때에 원래 경계가 없던 에덴동산. 그러나 탐욕으로 인해 에덴동산 밖으로 쫓겨난 인간에게, 노동과 휴식의 경계가 생기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 직면하게 된 바로 그 성경 구절을 묵상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경계가 없는 세상을 마련해 주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걸으셨음도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건강한 마음으로 ‘좋은 경계’를 지켜야 할 것입니다. ‘나와 너’의 경계, ‘가족 구성원’들 간의 경계 뿐 아니라, ‘자연과도 엄격한 경계’를 지켜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삶에는 ‘좋은 경계’가 있습니다. 그 경계만 잘 지킨다면, 서로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고, 그 경계가 서로를 행복하게 이어주는 좋은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