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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이웃의 고난 / 강주석 신부

강주석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입력일 2021-05-17 수정일 2021-05-18 발행일 2021-05-23 제 3246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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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평양에서 열렸던 제6차 노동당 세포비서 대회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또다시 ‘고난의 행군’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폐회사에서 “당중앙위원회로부터 시작해 각급 당조직들, 전당의 세포비서들이 더욱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할 것을 결심했다”고 말했는데, 노동당의 ‘당세포’는 약 5~30명으로 구성된 최하위 조직으로 책임자인 세포비서는 그 수가 수십만 명에 달한다.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란 말은 본래 김일성의 빨치산 활동과 관련을 맺는다. 「정치사전」(평양, 사회과학출판사, 1973)은 ‘고난의 행군’을 “혁명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조선혁명을 계속 양양에로 이끄시기 위하여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친솔하시고 1938년 12월부터 1939년 봄에 걸쳐 중첩되는 난관과 시련을 뚫고 피어린 전투로 낮과 밤을 이으시며 몽강현 남패자로부터 우리나라 북부 국경일대에로 진출하신 100여 일간의 간고한 행군”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북한의 역사는 이처럼 김일성의 항일빨치산이 일본군의 추격을 뿌리치면서 불굴의 의지로 모진 추위와 식량난을 이겨냈던 경험을 가르치는데, 항일무장투쟁을 국가의 건국이념으로 삼는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은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건이 됐다.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 국가적 구호로 다시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사회주의 경제권이 몰락한데다가 1994년에 김일성이 사망하고 자연재해까지 이어지면서 북한에서 참혹한 식량난이 발생했다. 국가적 위기 속에서 1996년 1월 로동신문 등은 신년 공동사설에서 모자라는 식량을 함께 나눠 먹으며 일본군에 맞서 투쟁한 항일빨치산의 눈물겨운 고난과 불굴의 정신력을 상기시키며 “‘고난의 행군’ 정신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가자”고 호소했다. 배급체제가 무너졌던 이 시기에 북한 전역에서 굶어 죽은 사람의 수가 적게는 수십만에서 많게는 수백만에까지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에 발표된 사회회칙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복음서의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가 오늘날에도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시면서 경계를 넘는 이웃사랑의 의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차이를 내려놓고 고통 앞에서 그 어떤 사람에게라도 가까이 다가가라고 요구하십니다. 따라서 나는 도와줄 ‘이웃’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다른 이들의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모든 형제들」 81항)

가난하고 불쌍한 형제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고난의 행군’은 이 땅에서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남북 모두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비극을 막기 위해서 우리 민족 모두가 함께 노력할 수 있기를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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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석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