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마음의 빛이 새 생명입니다

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
입력일 2021-05-17 수정일 2021-05-18 발행일 2021-05-23 제 3246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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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강림 대축일

제1독서(사도 2,1-11) 제2독서(1코린 12,3ㄷ-7,12-13) 복음(요한 20,19-23)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의 생명이며 성사의 은총을 내려주시는 성령
하느님이 우리 마음에 주신 평화는 사랑의 결실이자 성령의 열매이니 주님을 따라, 영원한 생명의 길로

성령 강림 대축일인 오늘은 문을 여는 날입니다. 생명의 바람이 불어와 잠가놓은 마음의 문을 엽니다. 부활축제의 시기가 끝나는 오순절에 성령 강림은 하느님의 가장 큰 사랑의 선물입니다. 오소서 성령님, 내면의 성전에 주님의 빛을 비추소서.

오순절의 기원은 시나이산의 계약을 기억하며 거룩한 모임을 소집하도록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이스라엘 축일의 하나입니다. 누룩 없는 빵을 바치는 무교절 후 50일간 주간절(레위 23,15-16)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에는 세계 각국에 사는 독실한 유다인들이 모입니다.

오순절에 다락방에 모인 사도들이 기도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고, ‘불꽃 모양의 혀’가 각 사람 위에 내려앉습니다(제1독서). 그들은 성령께서 주시는 표현의 능력대로 신령한 언어를 말합니다. 그 소리를 듣고 몰려온 로마, 그리스, 소아시아, 이집트 등에서 온 이들이 자국 언어로 들으며 무아경에 젖습니다.

제 영혼이 주님을 찬미합니다(화답송, 시편 104). 주님 보시기에 좋은 피조물이 온 세상에 가득합니다. 창조의 근원은 ‘하느님의 영’이요 ‘생명의 숨’(창세 1,2; 2,7)입니다. 주님께서 숨을 보내시면 그들은 창조되고, 온 누리의 얼굴은 새로워집니다.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성령의 힘과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의 생명이신 성령의 은사와 활동을 밝힙니다(제2독서). 교계의 직분과 성사의 은총을 주시는 성령께서는 친교와 봉사로 공동선을 위해 활동하도록 이끄십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지체는 많아도 한 성령 안에 한 몸으로 일치를 이룹니다.

오늘 미사 전례에서 우리는 독서 후에 성령 송가로 주님을 찬미합니다. 성령님은 ‘주님의 빛’이시고 ‘가난한 이의 아버지’십니다. ‘가장 좋은 위로자 영혼의 기쁜 손님’은 생기를 돋우십니다. 그리스도의 은총과 성령의 친교로 공덕을 쌓아 구원의 문을 여는 삼위일체의 삶에 찬미와 감사를 드립니다.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잠가놓고 있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출현하십니다. 그들 가운데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씀하시고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십니다(복음). 주님께서 십자가 수난 때 흩어졌던 제자들에게 평화를 기원하신 것이 아니라, 평화의 선물을 주시어 그들을 새 인물로 변모시키십니다.

주님께서 다시 “평화가 너희와 함께!” 축복하시고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아담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듯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며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사도들에게 충만한 영적 생명을 주시고 주님께서 함께하시는 교회 시대가 열립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들에게 주신 성사권을 통해 하느님의 은총을 누립니다.

주님의 평화(shalom)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세상의 평화가 아니라, 마음의 평화입니다. 인간 생명의 존중과 증진에 필요한 평화는 사랑의 결실이며 성령의 열매입니다. 죄의 용서와 사랑의 선물을 주시는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바르나바 다 모데나 ‘성령 강림’ (1377년).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수많은 성령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처음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영과 숨결, 모세의 율법, 예언자들의 예언, 메시아의 선구자인 요한의 목소리, 은총이 가득하신 성모 마리아, 주님의 강생과 수난과 부활의 신비에는 성령께서 함께하십니다.

교부들의 전승, 성인들의 증거, 교회의 교도권, 성사의 전례와 기도, 사도직과 선교의 삶에는 살아계신 성령의 친교가 드러납니다. 성령은 거룩함의 신비이기에 생수, 기름 바름, 불꽃, 구름과 빛, 구원의 표지(인호), 안수, 하느님의 손가락, 비둘기 같은 이미지를 통해 성령의 존재와 힘을 깨닫습니다(가톨릭 교리 688, 694-701).

“나를 따르라(follow me).” 하신 주님의 부르심을 들은 뒤, 기도 속에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은 기억이 납니다. 요한복음을 읽은 뒤, 신앙을 고백하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이미지가 아니라 우리의 삶에 현존하시는 실체임을 압니다. 우리의 내면에 계신 성령의 영감이 생수와 포도나무의 수액처럼 흘러나와 생명을 존중하고 진리의 말씀을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어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령의 궁전인 교회는 사도들의 신앙 안에 살아있는 성령의 활동입니다.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에 참여하는 우리는 성령의 은사와 힘을 받습니다. 연약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어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와 절제(갈라 5,22-23)의 열매를 맺게 해주십니다.

우리 마음의 빛이신 성령께 대한 신심을 어떻게 가져야 할까요? 성령 안에 삶은 마음의 힘인 기도와 제자가 되는 삶입니다. 날마다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분별하며, 그리스도를 따라 사랑의 삶을 삽니다. 오소서, 성령님. 참 빛이요 영원한 생명이시여, 저희 마음의 깊은 곳을 채우시어 사랑의 불을 타오르게 하소서. 아멘.

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