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세상의 빛] 120. 가치에 대한 성찰 - 올바른 희망이란 무엇일까 7. 희망과 행동, 사회적 책임

이주형 신부 (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못자리)
입력일 2021-05-17 수정일 2021-05-18 발행일 2021-05-23 제 3246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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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 복음적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
「간추린 사회교리」 539항
하루에 38명꼴인 자살자 수 빈곤 계층 극단적 선택 많아
사회 문제 대한 책임 통감하고 이웃에 손 내밀며 희망 전해야

“여기 있는 모든 것이 특별하다고 말하면 어떨까. 지금 여기에 모인 사람 가운데 특별하지 않은 이가 아무도 없다고 말하면 어떨까. (중략) 사람을 살리는 의사도, 성적을 비관하며 아래만 바라보며 걷는 학생도, 수레를 끌며 엘리베이터 문에서 나서는 택배 배달원도, 커피 위에 우유 거품으로 무늬를 새기는 바리스타도, 승용차를 타고 출근길에 나서는 거주민을 향해 일일이 거수경례로 배웅하는 경비원도 어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특별하다고 말하면 어떨까.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고귀하다고. 그리고 내가 하는 이 일도 너무나 소중한 직업이라고.”(김완 「죽은 자의 집 청소」 중)

■ 안타까운 자살

2019년 한국의 자살자 수는 1만3799명, 하루에 약 38명꼴입니다. 자살 그 자체도 큰 아픔이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저소득과 빈곤 계층에서 자살이 압도적으로 많이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가난, 소외, 외로움은 고독사·자살과 동반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런 죽음에 경계나 차별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부자든, 권력가든 누구에게나 한순간에 찾아오는 유혹이 바로 자살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최근에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는 응답이 가파르게 증가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개인적·사회적 위기, 고용 불안과 파산, 소외와 괴로움이 한계에 이른 것입니다. 더욱이 정서적 지원이 필요한 아이들과 자립도가 낮은 1인 가구, 사회적 기반이 취약한 계층, 고용과 생활이 불안정한 사람들, 연로한 어르신들에게 많이 나타납니다. 안타까운 자살의 사연은 가지각색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 경제적 궁핍, 심한 모욕,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 삶의 허무, 그리고 지독한 고독 등 우리가 한 번쯤 겪어 봤을지도 모를 불행들입니다.

■ 돌아가신 분들 진심으로 헤아려야

“세상에 내 존재가 없어도 된다는 확신이 들 때 죽자는 생각이 들어요. 죽어도 괜찮다는 거죠. 날 원하는 곳도 없고 죽으나 사나 별문제 없다고요. 내가 오늘 죽든 내일 죽든 아무도 관심 없을 거라 확신했죠.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이 죽음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해요.”(다큐멘터리 ‘생의 마지막 한 걸음’ 중)

괴로움에서 도망치고 싶고, 존재와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자살 유혹이 엄습합니다. 현실과의 싸움이 진저리가 나고, 지쳐서 살려 달라는 목소리조차 내지 못할 때 극단적 선택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싸움에 졌다기보다, 구조적 어려움으로 인해 극한의 상황으로 내몰린 것이고, 다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것입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 속에서, 더 유복한 환경에서, 안정적인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니라 늘 혼자, 각박하게, 눈물과 외로움 속에서 살아온 분들에게 그런 위기가 더 자주 찾아옵니다. 우리 역시 그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자살을 엄격히 반대하지만 자살자에 대해 함부로 단언해서는 안 된다고 밝힙니다. 또한 그것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자살자를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한다고 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283항)

■ 희망은 손과 발걸음을 통해

최근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는 관악구 인근 고시촌에 ‘참소중한...’센터를 개소했습니다. 관악구 인근 고시촌은 1인가구 비율과 빈곤율이 타 지역보다 높고, 자살 및 고독사가 가장 많은 지역입니다. ‘참소중한...’센터는 삶이 고단한 분들에게 작은 쉼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일입니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명동밥집’, ‘자살예방센터’, 노동사목위원회의 ‘로사리아맘 반찬 나눔’ 등도 같은 지향으로 시작된 일들입니다. 그 도움은 좀 더 많은 곳에서 실천돼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웃을 돕기 위해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간추린 사회교리」는 이런 노력들을 인간존엄과 사회적 책임을 통해 강조합니다. 사회교리의 대상은 바로 인간이며(81항) 그리스도인에게는 수행해야 할 사회적 책임이 있습니다.(83항) 여기서 사회적 책임이란 복음적 부르심에 응답하고, 세상의 복음화를 위한 인권, 생명, 도덕과 윤리, 정의와 평화,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83항) 그리고 신앙생활을 통해 얻는 결실 중 하나가 바로 사회적 책임이라고까지 가르칩니다.(539항) 고단함에 머무는 누군가에게 “당신은 특별합니다. 용기를 가져요. 우리 함께 이겨냅시다.” 이 말을 건네고, 우리의 손과 발걸음과 인내로 희망을 전해야 합니다. 그 희망은 바로 하느님이고 그래서 희망은 하느님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행동입니다.

“성사 거행, 특히 성체성사와 고해성사 거행을 통하여 사제는 신자들이 구원의 신비의 결실로서 그들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도와준다.”(「간추린 사회교리」 539항)

이주형 신부 (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못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