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585) 사욕과 치유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1-05-17 수정일 2021-05-18 발행일 2021-05-23 제 3246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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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목이 심하게 부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까스로 미사를 봉헌한 후 이비인후과에 가서, 주사도 맞고 약도 타서 먹었습니다. 그런데 내심 걱정이 컸습니다. 왜냐하면 그다음 날부터 1박2일 동안, 어느 본당의 전 신자 ‘사순 특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하루 종일 약을 먹고 휴식은 취했지만 편두통까지 생겨서 더 힘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병원에 또 가서 주사뿐 아니라 링거까지 맞았더니 차도가 있었습니다. 이에 공소로 돌아와 잠시 쉰 후, 특강할 성당으로 갔습니다. 본당 주임 신부님은 나를 환영해 주는데 어딘가 모르게 기운 없는 나를 보고, ‘아프냐’ 묻기에 ‘몸이 좀 안 좋다’고 말했더니, ‘그럼 말을 하시죠, 특강을 취소했을 텐데. 신부님 몸이 우선이죠!’라고 하셨습니다. 신부님의 그 따스한 말씀이 참 고마웠습니다.

토요일 저녁 6시 미사 때부터 ‘사순 특강’을 했습니다. 미사 후, 주임 신부님은 백숙과 문어를 넣어 끓여주는 식당으로 나를 데려가 주셨고, 거기서 따스한 국물을 먹었더니 몸이 편안해졌습니다. 이어서 주임 신부님은 사제관 손님방으로 나를 안내하셨고, 보일러 온도를 높인 다음 푹 쉬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 몸은 좋아졌습니다. 주임 신부님은 아침식사로 누룽지를 끓여놓고 나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약 때문인지, 아니면 신부님의 배려 덕분인지 기운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전 7시, 8시30분, 10시30분 미사 때에도 ‘사순 특강’을 잘 할 수 있었습니다.

오전 특강을 마친 후 주임 신부님은 내 몸의 컨디션을 살피시더니, 본당 총회장님과 점심 외식을 제안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식당에 가서 식사를 했습니다. 식당 직원이 후식으로 ‘비빔’과 ‘물’ 냉면을 주문 받는데, 나는 그만 - 식탐에 빠져, 몸 상태를 잊은 채 좋아하는 비빔냉면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점심식사를 마치고 식당 밖으로 나서자마자, 매운 기운 때문에 목이 또 아프기 시작하더니 편두통도 재발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치유의 은총을 주셨지만, 나의 욕심으로 인해 그 은총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편두통이 일고 목까지 붓는 걸 보시자 주임 신부님은 본당 교우 중에 한의사인 형제님께 급히 전화를 해서 왕진 요청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형제님께선 주일임에도 불구하고, 한걸음에 달려오셔서 진맥을 짚어주시고, 침도 놔주시고, 한약도 주셨습니다. 그래서 가까스로 그날 저녁, 7시 미사와 특강을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사순 특강 일정이 끝나자, 주임 신부님은 수고하셨다면서 저녁으로 뭐 드시고 싶냐고 조심스레 물으셨습니다. 이에 나는 미안한 마음에 ‘신부님 드시는 것이면 다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신부님은 나를 배려하기 위해 동네에서 ‘명태 찜’ 잘하는 곳으로 유명한 식당으로 데려가 주셨습니다. 거기서 ‘명태 찜’을 먹는데, 사실 ‘명태 찜’이 은근히 매웠고, 사제관으로 돌아온 후에는 배도 아파서 화장실에 밤새 들락-날락 했습니다.

장염까지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매운 ‘명태 찜’을 신나게 먹은 결과…. 밤새 고생하는 나에게 미안해 하시는 주임 신부님, 나를 위해 해주신 주임 신부님의 여러 배려들을 끝내 죄책감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저녁에 뭐 드시고 싶냐 물었을 때, 솔직하게 부드러운 죽을 먹으면 좋겠다는 속마음을 이야기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느님께서 1박2일 동안, 계속해서 치유의 은총을 베풀어 주셨지만, 그 은총을 사욕으로 쓰면 모든 건 다 ‘땡’이 됩니다. 관심과 배려가 기적을 일으키고, 기적과 기적이 만나 치유의 은총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사욕’은 의식뿐 아니라, 무의식중에도 우리를 항상 걸려 넘어지게 한다는 것을 생생히 묵상했던 1박2일이었습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