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세상의 빛] 121. 가치에 대한 성찰 - 올바른 희망이란 무엇일까 8. 희망을 위한 식별 (「간추린 사회교리」 547항)

이주형 신부 (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못자리)
입력일 2021-05-25 수정일 2021-05-25 발행일 2021-05-30 제 3247호 17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주님을 경외함이 곧 지혜며, 악을 피함이 슬기다”
거짓과 가짜에 휘둘리지 않고 성찰 속에 끊임없이 식별할 때 올바른 희망으로 나갈 수 있어

“시도해 보지 않고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지혜’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곳에는 보물이 없다’는 정보는 지도를 확인해 가며 그곳을 샅샅이 찾아본 사람만이 갖게 되는 지혜이다. (중략) 이렇듯 지혜는 정직한 시간과 생명을 바침으로써만 확인될 수 있는 것이라는 이 진리를 깨닫는 것부터 지혜는 시작되는 게 아닐는지.”(김혜윤 「생손앓이」 중)

■ 지혜의 근원이신 하느님

지혜문학은 이집트를 비롯한 고대 근동에서 유행했던 문학 장르입니다. 가정과 궁중을 위한 실용적 지식부터 인생의 행복과 성공, 인간의 도리와 처세, 근원을 탐구하는 철학적 사유에 이르기까지 그 내용도 매우 다양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지혜문학을 구약성경에서 발견합니다. 욥기, 잠언, 코헬렛, 지혜서, 집회서를 지혜오경이라고 하는데 옛날 이스라엘의 현인들은 지혜문학을 하느님의 계시와 신앙을 바탕으로 재해석했습니다.

믿음과 올바른 삶을 통해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의 잠언, 한계와 허무 속에서 헛되다는 탄식을 연신 쏟아내지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신비를 집요하게 좇는 코헬렛, 고난 속에서 하느님과의 만남을 묘사하는 욥기가 대표적입니다. 또한 높은 신학적 완성도를 보여주는 집회서와 의로운 이가 얻을 불사의 생명과 신적 지혜를 묘사한 지혜서에 이르기까지 지혜오경은 이성적 탐구로 하느님을 바라보며 하느님이 지혜의 원천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을 경외함이 곧 지혜며 악을 피함이 슬기다”(욥기 28,28)라는 유명한 결론을 내놓기에 이릅니다.

■ 식별을 위한 지혜

지혜와 지식이 좀 다르다고 하지요? 지식은 공부나 책을 통해 얻지만 지혜는 삶을 통해 얻는다고 합니다. 지혜는 지식을 통해서도 얻지만 그보다는 경험과 체험, 성찰과 깨달음의 산물입니다. 패배의 쓰라림, 고통스러운 순간에 배우는 것이 지혜이기에 이를 삶의 기술이라고도 합니다. 나아가 인과응보와 상선벌악을 알아도 세상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도 참 많고, 이면에 숨겨진 신비로운 지혜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지혜를 통해 우리는 현상과 사물을 파악하고, 모호함을 분별하며 다가올 시간에 슬기롭게 대처해, 삶을 행복하게 가꾸어갑니다. 또한 지혜는 분별과 식별을 해 줍니다. 각종 정보와 지식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너무도 쉽게 뉴스들에 사로잡혀 삽니다. 거짓과 가짜를 쏟아내는 세태도 문제이지만 그것을 해석해야 할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현상과 세태를 접하며 보이지 않는 지혜와 이치를 읽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희망은 그런 올바른 식별과 분별, 지혜 속에서 간직됩니다.

■ 식별을 통해 참된 희망 일궈야

「간추린 사회교리」에서도 지혜를 종종 언급하며 사회를 마주함에 있어 ‘슬기롭게 행동하기’(acting with prudence)를 강조합니다.(547~548항) 여기서 ‘prudence’는 지혜 또는 슬기와 유사한 의미이나 ‘조심함, 신중함, 침착함, 분별력’이 가미된 뜻입니다. 이는 마치 성모님께서 감당하기 어려운 구원사건을 접하시고 이를 마음에 간직하며 곰곰이 생각하셨음을 떠오르게 합니다.(루카 1,29; 3,51) 희망은 분명히 외쳐져야 하고, 실천돼야 합니다. 때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과도 맞서야 하고, 어려운 시간을 견디어 낼 줄도 알아야 희망이 유지되겠지요.

그러나 거짓과 가짜에 휘둘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특별히 현대사회를 병들게 하는 것에 대해 언급하고 싶습니다. 모든 폭력과 악의 뿌리이기도 한 이것은 이성과 식별을 마비시키고 인간됨마저 상실하게 합니다. 희생양과 잔인함마저 정당화하고 모든 것을 파괴합니다. 바로 ‘혐오’입니다. 지혜는 혐오와 사랑을 구분시킵니다. 하느님의 것과 악을 구별합니다. 그리하여 혼란 속에서도 우리가 가야 할 희망의 길을 알려 줍니다. 기도와 성찰 속에서 올바른 희망을 위해 끊임없이 식별해야 합니다.

“상황을 식별하고 평가하며 결정에 영향을 주고 행동을 촉구하는 데에 예지가 행사되는 세 번의 명확한 시기를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문제를 연구하고 필요한 의견을 구하는 성찰과 의논의 시기이며, 두 번째 시기는 하느님의 계획에 비추어 현실을 분석하고 판단하는 평가의 시기이다. 세 번째 시기는 앞 단계들에 기초한 결정의 시기로서, 취할 수 있는 여러 행동 가운데서 선택할 수 있게 해 준다.”(「간추린 사회교리」 547항)

이주형 신부 (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못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