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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일치를 위한 성심(聖心) / 강주석 신부

강주석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입력일 2021-06-01 수정일 2021-06-01 발행일 2021-06-06 제 3248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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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미국 공화당은 극보수주의자 배리 골드워터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그는 미국이 좌파의 음모로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한 인물이었는데, 이 같은 현상은 미국인들 내면에 뿌리 깊게 자리한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를 가늠하게 해 준다. 같은 해 발표된 리처드 호프스태터(Richard J. Hofstadter)의 ‘미국 정치에서의 편집증’(The Paranoid Style in American Politics)도 이러한 미국인들의 두려움을 소개하고 있다.

호프스태터는 에세이에서 당시 우익 사상에 영향을 미쳤던 ‘음모론’을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자본주의를 훼손하고 경제를 연방정부의 통제에 맡기려는 사회주의 세력이 있는데, 그 절정이 바로 루즈벨트의 뉴딜(New Deal) 정책이었으며, 둘째, 정부 최고 관료들 사이에 깊숙이 침투한 공산주의자들로 인해 미국 정책은 지속적으로 미국의 국익을 팔아넘기는 자들에 의해 지배돼 왔고, 셋째, 공산주의 요원들 네트워크가 국가 전반에 스며들어 있어서 과거 예수회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교육, 종교, 언론, 대중매체의 모든 기구들이 충성스러운 미국인들의 저항을 마비시키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하고 있다는 주장 등이다.

21세기 미국 사회에서도 ‘좌파’나 ‘적’에 대한 편집증은 여전해 보인다. 지난 1월 국회의사당 난입사건을 지켜본 미국인들은 음모론을 주장하는 극우세력을 비난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행정부에 대한 이념적 공격 역시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퇴역한 장군과 제독 124명이 서명한 공개서한을 퇴역 장성 단체인 ‘플래그 오피서즈 포 아메리카’(Flag Officers 4 America)가 지난 5월 11일(현지시간)에 발표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단체의 웹사이트는 “국내외 모든 적들에 맞서 미국의 헌법을 지지하고 수호할 것을 맹세한다”면서 자신들의 성격을 밝히고 있는데, 공개서한은 “우리나라가 깊은 위기에 처해 있으며, 우리는 1776년 건국 이래 그 어느 때보다도 입헌공화국으로서의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밝힌다. 또한 “갈등은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지지자들과 헌법적 자유와 해방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진짜’ 사회주의자들이 들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미국의 현 대통령과 여당의 주류를 좌파로 몰아세운 것이다.

해방 이후 미국식 민주주의를 이식받았고, 동서냉전으로 인해 참혹한 전쟁까지 겪은 우리 사회도 ‘적’에 대한 일종의 편집증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두려움과 증오가 만연한 이 땅의 교회가 일치와 화해를 위해 간절히 봉사해야 하는 이유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적’과 ‘우리’를 가르는 이분법을 넘어섰던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야 한다. 예수 성심 성월에는 우리 신앙인들이 조금 더 자비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은총을 청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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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석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