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 공상도 약이다

홍성남 신부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
입력일 2021-06-01 수정일 2021-06-01 발행일 2021-06-06 제 3248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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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한 시간때우기 아니라
스트레스 쌓인 몸에 긴장 풀어줘
우울하거나 불안한 이에게 필수

직장 없는 백수들은 돈이 없으니 밖에 나갈 엄두가 안 납니다. 그래서 하루종일 집 안에서 공상을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는 부모님들은 역정을 내십니다. 공상을 무의미한 시간때우기라고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상은 의의로 심리치료적 효과가 있습니다. 백수들이 건강한 것은 공상 덕분이란 것입니다. 공상을 오래 하면 그것이 현실처럼 여겨져 심리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상은 우울증 치료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우울증에 대해 작가 윌리엄 스타이런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울증은 누구나 걸릴 수 있으며 원인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 그는 우울증을 ‘보이는 어두움’(darkness visible)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스타이런은 우울증이 다른 질병과 확연히 다르다고 말합니다. 익사나 질식사와 비교하면서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좀비처럼 걷고 말할 수는 있지만 진정한 인간으로는 살아가기 힘들다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이런 환자들에게 나름의 효과를 갖는 것이 공상입니다. 공상을 하면 스트레스가 쌓인 몸의 긴장이 풀립니다. 피로물질 분비가 적어지며 재충전이 됩니다. 그래서 살기 힘들어 우울하거나 불안한 분들일수록 즐거운 공상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쓴 영국 작가는 지독하게 가난했지만 늘 공상 속에 살았고, 그 공상을 글로 써서 자기 인생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한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도 공상을 마음껏 한 아이들은 건강합니다.

공상을 못하고 메마른 삶을 산 아이들은 영혼 없는 어른이 되어 갑니다. 나이 들어 공상을 하면 나잇값 하라고 꾸짖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야 말로 자신은 현실적인 삶을 산다고 자부하지만 내적으로는 황폐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들입니다.

공상은 메마른 사람에게 오아시스와 같은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마음과 몸이 지쳐가는 지금이야말로 공상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아재 유머’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천당에서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정하는 자격시험 문제로 잡초 하나를 주셨습니다. 잡초를 보고 소감을 쓰라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1번 지원자가 나오더니 “잡초는 쓸 데 없으니 뽑아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저 아이는 강박증 환자 같으니 풀 뽑는 데로 보내라”고 해서 그는 천당 정원사가 됐습니다.

2번 지원자는 잡초를 보자마자 징징 울면서 “잡초를 보니 꼭 제 인생 같습니다. 아무도 저를 쳐다보지도 않습니다”고 하자 하느님께서 “저 아이는 피곤하기 이를 데 없는 아이니 격리된 보직을 주어라” 하셔서 그는 천당 영안실에서 곡소리 하는 자리로 배정됐습니다.

3번 지원자는 “잡초는 아무도 물도 안 주고 신경도 쓰지 않는데 저렇게 튼튼하게 자라니 정말 대단해 보입니다”고 하자 그는 천당 상담소로 발령이 났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눈에 잡초는 어떤 것으로 보이시나요?

홍성남 신부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