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사람에게 생명 주시는 살아있는 빵이여, 믿나이다!

장재봉 신부 (부산교구 월평본당 주임)
입력일 2021-06-01 수정일 2021-06-02 발행일 2021-06-06 제 3248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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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제1독서(탈출 24,3-8) 제2독서(히브 9,11-15) 복음(마르 14,12-16.22-26)
항상 순수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어린아이처럼 예수님 따르면 그것이 주님을 기쁘게 하는 일
작은 빵조각으로 우리 안에 오신 하느님 사랑에 깊이 젖어들길

새벽, 예수님 마음에 가장 깊이 자리했을 인물들이 떠올랐습니다. 아마도 어머니 성모님을 향한 감사가 첫 자리를 차지할 테고 당신을 끝까지 따랐던 제자들과 순교자들을 향한 사랑이 그득 고여 있을 듯했는데요. 물론 일상에서 사랑을 살려고 애쓰는 우리를 향한 어여쁨도 때마다 깃들 것이라 싶더군요. 언뜻 요셉 성인을 향한 예수님의 심정이 마음을 적셨는데요. 요셉 성인의 헌신이야말로 예수님의 마음에 은혜로 각인되어 있을 것이라 짚어졌던 겁니다. 때문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올해를 요셉 성인의 해로 반포하시며 그 감사의 마음을 이심전심 느끼도록 해주신 것이라 싶어 은혜로웠습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성심을 기억하면 고통을 떠올리지만 예수님의 마음에는 고통을 넘어선 기쁨과 감사가 훨씬 더 크게 자리했을 것임을 이제야 깨닫다니, 송구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주님의 성심을 떠올리면 으레 고통받으심에 집중하느라 생각도 말도 행동도 조심조심…, ‘죄인의 자세’를 견지하려 애쓰는 우리 모습을 안타까워하실 것도 같았습니다. 예수성심을 위로한답시고 으레 ‘우울모드’를 장착하는 건 오히려 그분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당신 앞에서 쩔쩔매는 종으로 여기지 않으시며 당신의 형제로 받아들이고 벗이라 칭하시니 말입니다. 주님의 마음이 늘 고통에 시달리며 슬픔으로 점철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성경에서도 분명히 일러주니 말입니다. “나는 날마다 그분께 즐거움이었고 언제나 그분 앞에서 뛰놀았다.”(잠언 8,30)

예수성심을 묵상하는 마음에 매일 봉헌되는 미사를 통해서 은총을 쏟아 주시며 기뻐하시는 주님의 모습이 겹쳐왔습니다. 미사를 거행하며 당신의 희생을 재현하는 사제의 행복이 차올랐습니다. 예수님의 천국 생활이 얼마든지 기쁘고 신나고 유쾌하리라는 걸 어찌 몰랐을까요?

두어 달 전, 어느 책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골치 아픈 일이 생기면 그 걱정거리를 메모해서 ‘잠자는 요셉상’ 밑에 끼워두고 주무시면 다 해결해주시더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이 기쁜 얘기를 교우분들께 당장 소문냈는데요. 일단 불면증에 시달리는 분들께 ‘특효’라며 시골 약장수처럼 장담도 했지요. 며칠 후부터 진짜로! 오랜만에 단잠을 잤다는 증언이 들려왔습니다. 신기했고 ‘역시, 우리 요셉 성인님!’ 싶더군요.

루카 시뇨렐리 ‘사도들의 영성체’ (1512년).

오랜 불면증으로 수면제가 필수였다는 자매님은 요셉 성인을 모신 후부터 약을 1/3로 줄여도 효과가 좋더랍니다. 불안한 마음에 약을 완전히 끊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냐며 놀라워하시더군요. 그런데 압권은 네 살 난 손주 녀석의 이야기였습니다. 잠에서 깰 때마다 꿈에 괴물을 봤다며 무서워하던 아이에게 ‘잠자는 요셉상’을 잠을 잘 자게 해주시는 ‘요셉 할아버지’라고 소개하며 선물했답니다. 아이는 “그럼 꿈에 나오는 괴물도 물리쳐주겠네요”라면서 손에 요셉 할아버지를 꼭 쥐고 잠자리에 들었다는데요. 깨어나서는 외치듯 소리치더랍니다. “꿈에 괴물이 나왔는데 할아버지가 무찔렀어요! 그래서 하나도 안 무서웠어요!” 이제는 잠자리에 들 때엔 으레 요셉 할아버지를 챙긴다니, 얼마나 어여쁜 믿음인지요! 그 얘기를 들으며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스쳤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우리에게 어린아이처럼 당신을 따르라 하셨는지, ‘어린아이처럼’ 믿는 것. ‘어린아이처럼’ 의탁하는 것,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것만큼 주님을 행복하게 해드리는 건 없다는 진리를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믿는다면서도 수면제를 포기하지 못하는 어른의 계략과 무조건 믿고 받아들이는 아이의 순수함….

어른이 된 우리는 수없이 계산하며 살아갑니다. 때문에 세상에서 비신자들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 모습을 살기도 합니다. 이야말로 그분을 모신 거룩한 모습을 다만 ‘교회용’으로 간직하고 ‘전례용’으로만 사용하는 어리석고 못난 행태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습니다. 이 모자란 믿음이 예수님의 마음에 상처를 낸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그렇습니다. 무엇이 사랑인지, 어떻게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는지, 무엇이 주님을 기쁘게 하는지를 알면서도 행하지 않으니, 반쪽 믿음입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이 딱한 ‘어른’들을 사랑하십니다. 때문에 미사를 통해서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시고, 또 저를 사랑하셨듯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요한 17,23) 해주시기를 간청하고 소원하십니다. 제발 하느님 아버지 안에서 일치하기를 꿈꾸십니다.

그러기에 미사는 하느님 사랑의 최고봉입니다. 삼위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바쳐 이루신 최대의 걸작입니다. 성체성사가 세상을 이기는 힘을 제공하는 생명의 원천인 까닭입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작은 빵조각으로 우리 안에 오셔서 함께하시는 주님의 사랑에 깊이 젖어들기 바랍니다. 하느님 자녀의 자긍심으로 언제나 어디서나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삶을 살기 바랍니다. “알파요 오메가이고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시작이며 마침”(묵시 22,13) 이신 예수성심께 어린이처럼 의탁함으로 이 땅에서부터 천국의 행복을 누리기 바랍니다. 단순하고 천진한 믿음으로 늘 승리하시길, 온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장재봉 신부 (부산교구 월평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