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587) 소탐대실(小貪大失) (상)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1-06-01 수정일 2021-06-01 발행일 2021-06-06 제 3248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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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갑장터 순교성지에 경당을 마련할 때의 일입니다.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세워진 작은 경당의 모습이 왠지 썰렁하여, 이곳을 찾는 순례자들에게 아늑함을 나누고자 조경 작업을 계획했었습니다. 그 시작으로 경당 주변을 조경석으로 쌓을 생각을 했지만, 막상 그 일을 맡아 줄 적합한 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고 있던 중, 다행히도 어느 교우분을 통해 조경과 조경석 쌓기 분야에 탁월한 실력을 가진 분의 전화번호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분께 전화를 몇 번 드렸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3일째 되는 날,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오던 날이었는데, 오전에 통화가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분은 연세가 지긋하신 할아버지였고, 날씨가 좋으면 현장에 가서 석축 쌓는 일을 하셨으며, 일하시는 동안에는 전화를 받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비오는 날 성지에서 처음 만났고 나는 그 할아버지에게 경당 주변의 조경석 쌓기 공사를 의뢰했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말없이 그냥 뒷짐을 지고 비오는 경당 주변을 딱 – 한 바퀴 반 정도를 돌더니 내게 말했습니다.

“어, 거시기, 공사는 한 3일 정도. 사람은 세 사람. 조경석 돌은 2차. 흙은 2.5톤 3차가 있으면 되것는디.”

“아, 그럼 공사해 주시는 건가요? 혹시 언제 하실 수 있으셔요?”

“음, 며칠 내로 전화를 할게요.”

보통은 조경 전문가라고 하면, 조경에 필요한 여러 조언을 주실만도 한데, 그분은 도통 말이 없으셨습니다. 그 후 조경 공사하기 3일 전, 그날도 비가 왔었는데, 할아버지는 내게 전화를 주시더니 성지에서 만나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만났더니, 할아버지는 호주머니에서 종이쪽지 하나를 꺼내어 내게 주었습니다. 그건 삐뚤삐뚤 손으로 쓴 ‘조경 공사 견적서’였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나, 뭔가 잘 정리된 견적서를 가지고 오실 줄 알았는데! 그리고 견적서 마지막에는 ‘철쭉 2000원, 500주, 100만 원’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 할아버지를 소개시켜 주신 분이 진득한 분이고, 할아버지가 조경석 쌓는 분야에서 출중하다는 말에 의심의 여지없이 그분과 일은 하려고 했지만, ‘종이쪽지 견적서’를 받고, 뭔가 전문성이 결여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함께 일은 하고 싶은데, 전문성은 떨어지는 듯하여 의구심마저 들었습니다. ‘그래, 믿고 가보자’하는 생각은 하면서도, 한 가지! 철쭉 가격이 내 생각과 맞지 않았습니다.

사실 며칠 전 성지에서 공소 식구들과 함께 ‘복자 최여겸 마티아 동산’을 조성했고, 그때 철쭉을 800원에 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종이쪽지 견적서’에 ‘철쭉 2000원’이라고 적혀 있어서 비싼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께 물었습니다.

“사장님, 혹시 철쭉은 저희들이 직접 사다가 갖다 드려도 되나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아무런 말도 없이그냥 고개만 끄덕이셨습니다.

드디어 외양간 경당 주변에 조경석 쌓기 작업이 시작되었고, 그날 아침에 나는 동료 신부님과 함께 소개 받은 철쭉 농장으로 가서 ‘800원짜리 철쭉’ 600주를 샀습니다. 수고와 노동의 대가로 할아버지가 견적을 낸 ‘2000원짜리 철쭉’보다 훨씬 싸게 ‘800원짜리 철쭉’을 샀다는 사실만으로 기뻤습니다. 그리고 조경석을 쌓고 있는 경당 현장에 철쭉 600주를 내려주며, 마음속으로는 후원자들의 봉헌금을 귀하게 사용했다는 생각에 내 자신이 기특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작업 중이던 할아버지는 우리가 가져온 철쭉을 힐끗 - 보더니, 혼잣말로 뭐라 하시며 한숨을 내쉰 후 고개를 절레절레 하더니 그냥 - 계속 일을 하셨습니다. 나는 그분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면서 뭔가 실수를 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다음 호에 계속)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