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와이셔츠 다림질을 기다리면서 / 서난석

서난석(레지나·제2대리구 문호리본당)
입력일 2021-06-08 수정일 2021-06-08 발행일 2021-06-13 제 3249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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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셔츠를 다림질하는 게 오래전 일이 되었다. 남편의 와이셔츠를 다릴 때에는 무언가 표현할 수 없는 경건함으로 채워졌다. 특히 흰 와이셔츠를 다릴 때에는 더욱 조신하고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했다. 다리미를 쥔 손끝이 다소곳해지고 진지했다. 아마도 그 순간을 뒤에서 하느님이 지켜보시는 듯해서였다.

남편 베드로는 매주 금요일 아침 미사마다 복사를 섰다. 그 바람에 와이셔츠를 늘 깨끗하게 손질하는 것은 내 몫이었다. 그 일이 귀찮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저 늘 새것처럼 청결한 와이셔츠를 입고 주님 앞에서 봉사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뿌듯했다. 그의 봉사에 동참한다는 어설픈 동질감이 앞섰다.

코로나19 여파가 시골 성당에도 그대로 몰려와 스산하다. 남편이 복사를 서던 것도 일시적으로 중단됐다. 낯설게 바뀐 현상으로 무언가가 헝클어졌지만 그것이 일상이 되었다.

남편이 대덕연구소에 근무할 즈음이었다. IMF 위기로 사회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주변에서 ‘명퇴’ 운운하면서 암운이 드리워져 편치 않았다. 그의 와이셔츠를 언제까지 다림질 할 수 있을지 가늠하면서 커가는 아이들이 아른거렸다. 가슴 저미던 일들이 아슴푸레 떠오른다.

남편이 퇴직하고 시골에 정착했다. 할아버지 복사를 서게 되면서, 흰 와이셔츠를 다시 다림질하는 감회는 남달랐다. 회사에 재직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나 역시 남편의 봉사에 동참하는 기분으로 주님께 ‘긍휼히 여겨주십사’ 염치없는 기도를 드렸다. 남편의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복사를 서게 될 것을 기대하면서 와이셔츠를 다림질하는 손끝에는 힘이 쥐어졌다.

그가 하느님 가까이 서서 심부름 하는 의연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꺼웠다. “그런 기간이 길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도를 드리곤 했다.

그 뿌듯하고 행복했던 시간이 코로나19로 인해 사라졌다. 다림질이 멈추어져서인지 지금은 손에 힘이 빠져 무기력해진 상태다. 와이셔츠를 다림질하는 시간을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가늠해본다.

“하느님, 제발 코로나19의 독주를 멈추게 해주세요. 다들 지루하고 답답하다고 아우성이랍니다.”

와이셔츠를 다림질하는 행복을 되찾고 싶어서 오랜만에 긴 호흡으로 기도를 드린다.

서난석(레지나·제2대리구 문호리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