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를 배척했던 조선에서 이익과 정약용, 박지원과 같은 지식인들은 천주교 수양서인 「칠극」을 읽고 감탄하며 널리 읽길 권했습니다. 조선 지식인들을 서학으로 이끈 칠극의 매력이 무엇이었을까요.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조선에 전파됐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칠극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을 연구하고 있는 정민(베르나르도) 한양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는 정약용의 여러 글에서 「칠극」의 흔적을 발견했다. 정약용뿐 아니라 이익, 박지원에게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익은 유학의 기본 가르침인 극기복례와 일곱 가지 죄의 근원을 극복하고 질서 있는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는 「칠극」의 주제가 맥을 같이 한다고 여겼고, 자신의 제자들에게 「칠극」을 배울 것을 권했다고 전해진다.
“북경에서 선교했던 판토하 신부는 1614년에 한문으로 쓴 「칠극」에서 교만, 질투, 탐욕, 성냄, 식탐, 음란함, 나태함 등 인간이 범하기 쉬운 일곱 가지 죄종을 극복하는 단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했습니다. 천주교 수양서이지만 판토하 신부는 교리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그리스 철학자와 중세 성인들의 잠언과 일화, 중국 경전에서 예시를 끌어오는 등 거부감을 줄이는 장치를 마련해 동양의 지식인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했습니다.”
중국에서 조선으로 건너온 「칠극」은 남인 학맥의 큰 스승이었던 이익의 눈에 띈다. 그리고 그의 제자였던 농은 홍유한은 이 책을 접하고 난 뒤 칠극을 실천하고자 1757년 수계생활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