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588) 소탐대실(小貪大失) (하)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1-06-08 수정일 2021-06-09 발행일 2021-06-13 제 3249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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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당 주변에 조경석을 쌓으면서, 돌과 돌 사이에 철쭉나무를 심을 계획으로 조경석 작업을 하시는 할아버지는 철쭉 구입비용을 100만 원 책정하셨기에, 나는 철쭉나무를 반값에 살 수 있다는 판단으로 아침부터 철쭉 농장에 직접 가서 철쭉 600주를 사가지고 왔었는데! 그런 다음 철쭉 600주를 조경석 공사 현장에 내려놓고 기쁨의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 할아버지가 보여준 실망의 얼굴빛을 보며 뭔가 이상하다 싶어 공사 현장을 살펴보는 순간 나의 머리가 쭈뼛쭈뼛 서는 것 같았습니다.

할아버지가 경당 주변에 쌓아 놓은 조경석을 바라보면서 나도 모르게, 나 스스로가 먼저 ‘철쭉을 잘못 샀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경당 주변에 쌓아 놓은 조경석의 모습이 품격 있고, 우아하고, 아늑하여 자연히 ‘아, 좋다!’라는 감탄이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 옆에 내가 사가지고 온 힘없고, 초라한 철쭉은 지금 쌓이고 있는 조경석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걱정이 밀려왔습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하지!’ 그래서 공사 현장의 소장님에게 달려가서 나의 마음을 그대로 전달했습니다. 철쭉을 잘못 산 것 같다고. 그러자 소장님은 지금 사가지고 온 철쭉은 성지의 다른 곳에 심는 한이 있더라도, 할아버지에게 가서 그분이 원하는 철쭉을 사셔서 작업을 해 주십사 솔직히 말하라는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한창 일하시는 할아버지께 가서 말했습니다.

“어르신. 혹시 그때 말씀하신 한 주에 2000원짜리 철쭉을 지금이라도 사서 이곳에 심을 수 있을까요?”

그 할아버지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지금도 있는가 모르것는디, 순천서 와야 혀. 운송비고 뭐고 다 쳐서 그 비용인디, 암튼 저녁에 집에 가서 전화해 보것는디, 몰러.”

그렇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당신이 하는 조경에 대단한 자부심이 있어서, 조경 작업을 하기 전에 당신이 원하는 꽃이나 나무까지도 다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완벽한 서류를 준비하지는 못하지만, 당신 마음 속에는 작업의 모든 공정을 구상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경당의 조경 공사도 그랬습니다. 할아버지는 전국을 다니며 조경 공사를 하신 경험이 있기에, 우리 경당에 맞는 것으로 순천 지역의 어느 농장에 있는 ‘대왕 철쭉’을 눈여겨보고, 미리 주문을 했던 것입니다. 견적 받는 날, 내가 좀 더 할아버지에게 많은 이야기를 건네면서 물어봤으면 좋았을 걸, 그러지 않았습니다. 나는 할아버지가 건넨 ‘종이쪽지 견적서’를 보고, 크게 신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쩌면, 할아버지가 대충대충 하실 거라는 생각에 나도 할아버지랑 대충만 이야기하고, 그저 조경 공사를 싸게, 그리고 빨리 끝낼 생각만 했던 것입니다.

아무튼 그 다음 날, 공사하러 오신 할아버지는 내게 말했습니다.

“처음에 내가 주문했을 땐 있었는디, 우리가 취소하니까 다른 데서 다음날 확- 가져가 부렀다고 하네요잉. 할 수 없지. 뭐.”

공사비 50만 원 아끼려다가 500만 원 아니 5000만 원 상당의 가치를 놓쳐 버렸습니다. ‘종이쪽지 견적서’만 보고, 진짜 전문가를 알아보지 못한 나의 안목도 문제였지만, 근본적으로 사소한 것에 지나치게 아끼려다가 정말 큰 것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인생에서 좋은 것 하나 또 배웠습니다. 겉만 번지르르한 형식적인 전문가보다, 겉은 부족해 보이지만 속은 정말 알찬 분들이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많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분을 알아보는 안목이 제대로 된 살림살이가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그날, 후원자 분들께 죄송한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분들은 후원금을 아껴쓰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후원금이 제대로 쓰이는 것을 원하셨는데….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