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성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 교구 지정 순례지 탐방] (9)수리산성지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21-06-15 수정일 2021-06-15 발행일 2021-06-20 제 3250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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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성인 일가 머물며 신앙 이어온 터전
골짜기 깊어 천혜의 피난처
척박한 땅에 담배밭 일구며 신앙 공동체 이어가던 곳
성가정 위해 기도하는 성지

최경환 성인 생가 성당 내부. 제대 앞에 최경환 성인 유해가 모셔져 있다.

경기도 군포시 서북쪽 수리산은 2009년 경기도 세 번째 도립공원으로 지정됐을 만큼 명산이다. 특히 산자락의 안양9동 ‘담배촌’은 안양시가 문화 역사 등을 아우르며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으로 지정한 8경 중 5경에 속한다.

안양9동 병목안시민공원을 지나 계곡을 따라 오르면 수리산성지(전담 이헌수 신부)를 마주한다. 신앙인들에게는 박해 시대 신앙 선조들이 조정의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와 교우촌을 이뤘던 교회 역사와 순교의 거룩함이 배어있는 장소다. 가경자 최양업 신부 아버지 최경환(프란치스코·1804~1839) 성인과 부인 복자 이성례(마리아·1801~1840)가 대표적인 순교자다.

이곳은 마을의 지세가 병목처럼 입구는 좁지만 들어서면 골이 깊고 넓다 해서 ‘병목안’이라고 불렸다. 수리산 뒤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 해서 조선시대에는 ‘뒤띠미’로 불리기도 했다. 예로부터 땅이 척박해 담배밭을 일구고 옹기 장사를 하며 살아가던 작은 마을이었다. 깊은 골짜기가 많아 천혜의 피난처 역할을 했다.

최경환 성인은 천주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고향을 떠나 방랑하다 1838년 경 이곳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박해를 피해 온 신자들과 생계를 위해 담배를 재배하며 신앙생활을 지켜나갔다. 1839년 당시 수리산에는 60여 명의 신자들이 살고 있었다.

이런 배경에서 ‘담배촌’이라고도 불리게 됐는데, 최경환 성인은 2년 가까이 이곳에 있으며 전교 회장직을 맡아 열렬한 선교 활동으로 교우촌 공동체를 이끌고 신앙의 터전을 이뤘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고 그해 7월 31일 최경환 성인 일가와 이(李) 에메렌시아 등 40여 명의 신자가 체포됐다. 이후 성인은 1839년 9월 12일에, 이성례 복자는 1840년 1월 31일에, 하느님의 종 이 에메렌시아는 1839년 각각 순교했다.

순례자성당 입구에 세워진 최경환 성인과 이성례 복자의 동상.

옥중에서 모진 박해를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순교로 신앙을 증거한 성인은 살아있는 동안에는 이웃에 대한 사랑 실천의 표양을 보였다. 「조선 주요 순교자 약전」에 따르면 다른 이들에게 자선 베풀기를 좋아했고, 옷이 없는 이들에게 자기가 입고 있던 옷을 벗어준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박해와 기근으로 신자들이 순교자들 시신을 수습하고 매장할 겨를이 없을 때에는 의연금을 거둬 서울에 가서 순교자들 시체를 찾아 매장했다.

모정까지 하느님 대전에 내어놓았던 부인 이성례의 용맹한 신앙도 기억된다. 당고개에서 참수되기에 앞서 소식을 들은 어린 4형제가 동냥한 쌀자루를 들고 회자수(劊子手: 사형수 목을 자르던 사람)를 찾아가 단칼에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달라고 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2000년 전담 사제가 임명되면서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봉헌되기 시작한 성지에는 최경환 성인의 묘역이 조성돼 있으며 ‘순례자성당’과 ‘최경환 성인 생가 성당’, ‘십자가의 길’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전통 문양 지붕의 십자가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순례자성당은 전체 외관을 옛날 공소로 형상화했다. 지붕 십자가와 건물 상단 십자가 돌문양은 신앙을, 외장 적조는 순교자들의 피를 뜻한다. 목재 천정과 온돌마루 바닥의 성전 안은 아늑하다. 최경환 성인과 이성례 복자 성화 및 모자이크가 벽면과 창문을 장식하고 있다. 순교자들과 함께 자리한 듯 편안한 마음이 든다.

성인 유해는 1839년 9월 12일 순교 후 여러 번 장소가 옮겨지는 어려움 끝에 둘째 형 영겸씨 부자가 수리산에 안장했다. 묘역에는 후손들이 기증한 손뼈 5기가 봉안돼 있으며 묘역 십자가 중앙에 손마디가 안치돼 있다. 순례자성당과 최경환 성인 생가 성당에도 유해가 모셔졌다. 1984년 성인의 시성식에 즈음해 묘역에 순교기념비가 건립됐다.

1987년 세워진 다소 가파른 십자가의 길을 오르며 만난 최경환 성인의 묘소는 모든 것에 앞서 하느님을 증거한 삶을 스쳐 가게 한다. 그 장면들은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신앙인들에게 세상 흐름에 맞서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아갈 것을, 백색 순교의 삶을 호소하는 듯하다. 성지는 최근 성인 묘역을 정리하고 계단도 돌계단으로 정비했다.

성인 묘역 위쪽에 위치한 성모 동굴은 성지 성역화 사업 일환으로 1987년 6월 14일 축성식이 거행됐다. 프랑스 루르드의 성모 동굴을 본뜬 이 동굴은 최경환 성인 직계 후손들에 의해 마련됐다.

2006년 완공된 최경환 성인 생가 기념 성당은 빈터만 남아있던 성인 생가터에 지어졌다. 성인이 다섯 아들과 함께 생활한 집터다. 시골집 같은 분위기에 제대를 중심으로 모여앉아 기도할 수 있도록 한 성당 내부 모습은 당시 교우촌 광경을 연상시킨다.

수리산성지는 특별히 최경환 성인 가족의 영성을 본받아 성가정을 위해 기도한다. 아울러 개인 성화 및 최양업 신부가 신학생으로 선발된 성소 못자리였던 것을 되새겨 성소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성지로 가꿔지고 있다.

이헌수 신부는 “울창한 숲과 신선한 공기 속에 둘러싸인 자연 친화적인 성지 안에서 신자들이 자연과 함께 하느님을 만나고 최경환 성인을 만나는 마음으로 기도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