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성인 일가 머물며 신앙 이어온 터전 골짜기 깊어 천혜의 피난처 척박한 땅에 담배밭 일구며 신앙 공동체 이어가던 곳 성가정 위해 기도하는 성지
경기도 군포시 서북쪽 수리산은 2009년 경기도 세 번째 도립공원으로 지정됐을 만큼 명산이다. 특히 산자락의 안양9동 ‘담배촌’은 안양시가 문화 역사 등을 아우르며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으로 지정한 8경 중 5경에 속한다.
안양9동 병목안시민공원을 지나 계곡을 따라 오르면 수리산성지(전담 이헌수 신부)를 마주한다. 신앙인들에게는 박해 시대 신앙 선조들이 조정의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와 교우촌을 이뤘던 교회 역사와 순교의 거룩함이 배어있는 장소다. 가경자 최양업 신부 아버지 최경환(프란치스코·1804~1839) 성인과 부인 복자 이성례(마리아·1801~1840)가 대표적인 순교자다. 이곳은 마을의 지세가 병목처럼 입구는 좁지만 들어서면 골이 깊고 넓다 해서 ‘병목안’이라고 불렸다. 수리산 뒤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 해서 조선시대에는 ‘뒤띠미’로 불리기도 했다. 예로부터 땅이 척박해 담배밭을 일구고 옹기 장사를 하며 살아가던 작은 마을이었다. 깊은 골짜기가 많아 천혜의 피난처 역할을 했다. 최경환 성인은 천주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고향을 떠나 방랑하다 1838년 경 이곳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박해를 피해 온 신자들과 생계를 위해 담배를 재배하며 신앙생활을 지켜나갔다. 1839년 당시 수리산에는 60여 명의 신자들이 살고 있었다. 이런 배경에서 ‘담배촌’이라고도 불리게 됐는데, 최경환 성인은 2년 가까이 이곳에 있으며 전교 회장직을 맡아 열렬한 선교 활동으로 교우촌 공동체를 이끌고 신앙의 터전을 이뤘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고 그해 7월 31일 최경환 성인 일가와 이(李) 에메렌시아 등 40여 명의 신자가 체포됐다. 이후 성인은 1839년 9월 12일에, 이성례 복자는 1840년 1월 31일에, 하느님의 종 이 에메렌시아는 1839년 각각 순교했다.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