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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성직자성 장관 임명된 유흥식 대주교] 인터뷰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21-06-15 수정일 2021-06-16 발행일 2021-06-20 제 3250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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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 영적 성숙과 한반도 평화에 온 힘 기울이겠다”
■ 맡은 역할 수행하려면
사제 쇄신은 항상 시대적 요청
이를 위해 더 많은 것 익혀야
다른 나라 사제 양성 배우고 교황 뜻 알기 위해 노력할 예정
■ 높아진 위상 반영된 임명
한국교회, 아시아와 전 세계에 기꺼이 기여하려는 자세 필요
분쟁과 갈등 극복에 힘쓰며 남북 화해와 평화 견인할 것

신임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된 유흥식 대주교가 6월 12일 세종시 반곡동 대전교구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관 임명과 관련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 박원희 기자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으로 임명된 대전교구장 유흥식 대주교는 임명 발표 다음 날인 6월 12일 오후 4시 세종시 대전교구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에 모든 것을 맡겨 드린다”고 말했다. 유 대주교는 이날 회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관직 제안과 수락에서부터 성직자성 장관으로서의 소명 의식, 아시아와 한국교회에 주는 의미 등을 자세히 전했다.

한국교회 성직자로서는 처음으로 교황청의 최고위직 중 하나인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된 유흥식 대주교는 지난 4월 로마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장관직을 제안받고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고 말했다.

“개인 알현 자리에서 처음 이 같은 제안을 받고 제 귀를 의심하면서 아시아의 작은 교구 주교인 저는 너무나 부족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교황은 “다양한 방법으로 주교님에 관한 의견을 듣고 기도 가운데 식별했다”며 로마에 머무는 동안 “‘순명’이라고 생각하지도 말고 자유롭게 성령, 성모님, 한국의 순교자들에게 은총을 청하며” 숙고한 뒤 답을 달라고 말했다.

남은 일정을 혼란스럽고 복잡한 마음으로 마무리한 유 대주교는 다시 교황 알현을 청해 40분 동안 대화를 나눈 뒤, ‘예’라고 답했다. 이에 교황은 무릎을 꿇은 유 대주교에게 강복을 준 뒤, 집무실을 나서는 유 대주교를 따라와 승강기 버튼을 눌러 주고, 문이 닫힐 때까지 눈을 마주치며 배웅했다.

■ 더 배우고 익혀야 할 소명

교황청 성직자성은 전 세계 성직자들의 양성과 생활, 영성을 담당한다. 유 대주교는 가톨릭교회 안에서 성직자들이 갖는 의미와 역할을 염두에 두고, 모든 사제와 부제들이 스스로의 삶과 신앙을 성숙시킬 수 있도록 돕겠다는 생각이다.

“교회의 쇄신은 항상 시대적 요청으로 주어집니다. 그리고 교회 쇄신을 위해서는 반드시 사제들의 쇄신이 먼저 요구됩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사제와 부제들은 물론, 미래의 성직자인 신학생들과 신학교와 관련된 모든 일들은 대단히 중요하지요.”

그처럼 중대한 소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유 대주교는 먼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시아의 작은 교구 주교인 저는 서구교회와 다른 대륙의 사제 양성과 생활에 대해서는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사제들의 삶과 생활, 영성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교황님의 뜻을 헤아리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제들의 성추행 문제는 교회에 큰 상처를 입혀왔다. 유 대주교는 이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지만, 여전히 거룩한 사제들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품고 있다. 유 대주교는 그래서 이러한 과제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모든 성직자들이 인간적, 영적으로 더욱 성숙하고 복음적으로 양성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을 다짐한다.

■ 한국교회의 높아진 위상을 반영

유 대주교의 장관직 임명은 어떤 의미에서는 보편교회 안에서 한국교회의 높아진 위상을 반영한다. 이는 동시에 제삼천년기 아시아교회의 역할에 대한 기대이기도 하다.

“한국교회는 평신도로부터 시작됐고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했으며 엄청나게 성장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교황님께서는 한국교회가 한국을 넘어 아시아 대륙은 물론 전 세계 안에서 그 저력을 펼칠 수 있는 능력과 여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한국교회에서 교황청의 장관을 선택했다고 생각됩니다.”

한국교회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랑과 관심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최근 들어 한국교회 안팎에서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서 가톨릭교회가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타나고 있다. 그 가장 상징적인 사안이 교황 방북이다.

유 대주교는 지난 4월 교황 알현 당시에도 북한 방문과 관련해 교황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 방문 의지를 피력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 대주교와의 이번 알현 자리에서도 북한을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 남북한과 중국, 아시아 평화에 기여

실제 이탈리아와 로마 현지의 언론 보도에서도, 한국 성직자의 교황청 장관 임명이 북한 및 중국과의 관계 안에서 한국 출신 새 장관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담은 것이라는 분석들이 나왔다. 유 대주교도 교황 방북이 남북한은 물론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 평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실 북한은 지금 큰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어려움에 처해 있기 때문에 북한에서 교황님을 초청하고 방북이 실현된다면 남북한의 긴장이 완화될 수 있고, 이는 반드시 북한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남북 화해와 평화는 우리 민족에게 그야말로 지상과제다.

유 대주교는 “이제는 정말 분쟁과 갈등, 반목을 극복하고 평화를 위해 모든 노력을 해야 할 때”라며 “제가 교황청에 가서 일을 하면서, 그런 기대와 역할이 주어진다면 이를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성숙한 한국교회 모습 보여줘야

유 대주교는 나아가 한국교회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보편교회가 한국교회에 거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 코로나19 백신 나눔 운동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코로나19 때문에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지만,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와 국민들과의 나눔을 실천해야 합니다. 백신이 보급되고 있지만 가난한 나라들의 몫이 외면되는 경향이 있지요. 그런 가운데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을 맞아 한국교회가 펼치고 있는 백신 나눔 운동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 대주교에 따르면, 교황청에서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을 관장하는 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을 위한 부서 장관 피터 턱슨 추기경은 “한국교회의 백신 나눔 운동은 보편교회 안에서 한국교회의 위상을 한층 더 높여줬다”고 말했다.

유 대주교는 “한국교회가 그동안 많은 것을 보편교회로부터 받았으니 이제는 아시아와 세계를 위해서 기꺼이 기여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며 “한국교회도 이제는 나와 우리를 넘어 이웃을 위해서, 다른 나라를 위해서 기여하는 그런 자비로운 교회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 유흥식 대주교는…

1951년 11월 17일 태어났다. 1979년 로마 교황청립 라테라노 대학교 유학 중 사제품을 받고 1983년 같은 대학에서 교의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대전 대흥동주교좌본당 수석 보좌를 시작으로 솔뫼 피정의 집 관장, 대전가톨릭교육회관장, 교구 사목국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대전가톨릭대 총장을 지냈다.

2003년 6월 대전교구 부교구장 주교에 임명돼 그 해 8월 주교품을 받았다. 2003년 10월 아시아주교회의연합(FABC) 제8차 정기총회 주교대표, 대전교구 유지재단 이사장,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2005년 4월 대전교구장직을 승계했다.

2005년 4월 사회복지법인 대전가톨릭사회복지회 이사장을 맡았고, 2005년 9월에는 북한을 방문, 씨감자 무균 배양 시설 축복식을 주례했고 이후 3차례 더 방북했다. 이어 교황청 사회복지평의회 위원, 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원회 위원장, 주교회의 상임위원, 사회주교위원회 위원장,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을 거쳤다.

현재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주교회의 서기 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상임이사, 주교회의 엠마오연수원과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담당 주교를 맡고 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