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590) 실수가…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1-06-22 수정일 2021-06-22 발행일 2021-06-27 제 3251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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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양간 경당’ 축복식을 한 후, 1년 365일 매일 오후 3시면 봉헌할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 준비를 할 때입니다. 마음은 그리 하려 했으나, 그동안 개갑장터순교성지에 성당이 없었기에, 미사 시간 자체가 홍보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매일 오후 3시에 미사를 드릴 때마다 혼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매일 오후 3시에 미사를 봉헌하다 보면, 언젠가는 미사 시간이 알려지겠지.’

그러던 월요일 낮 12시30분경. 자매님 두 분이 ‘성지순례’ 책자를 들고 성지에 오셨습니다. 뒤이어 또 한 분이 ‘성지순례’ 책자를 들고 성지에 오셨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나는 ‘순례 도장을 찍으러 오셨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할 일이 많아 그분들께 따로 인사를 드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형제님 한 분이 경당 쪽으로 가다가 회양목 화단을 넘어 다니며 무언가를 찍으셨습니다. ‘어, 바로 옆에 작은 출입구가 있는데, 왜 저리 화단을 넘으시나!’ 속상한 마음에 하던 일을 멈춘 나는 창문을 열어 그분께 조심스레 말했습니다.

“형제님, 순례 오셨군요. 그런데 회양목을 넘어 다니지는 마시구요, 옆에 출입구가 있으니 그리로 다니면 참 좋겠어요.”

순간, 당황하신 형제님은 나를 쳐다보며,

“월요일인데 신부님이 계셨네요. 저희들은 서울에서 순례 왔어요. 잠시만요.”

그런 다음, 그 형제님은 좀 전에 사무실 앞을 지나가신 자매님들을 불렀습니다.

“자매님들, 여기 와 보셔요. 신부님이 계시니 우리 인사합시다.”

자매님들은 점심을 먹으려고 주차장 쪽으로 가려다가 돌아온 모양입니다. 그리고 나를 보더니 인사를 했습니다.

“신부님 안녕하세요? 월요일 날, 안 쉬셔요?” “예. 안녕하세요. 그리고 여기 성지에 있는 것도 잘 쉬는 거예요.”

“혹시, 여기 성지에도 미사가 있어요?”

“예. 매일 오후 3시에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가 있어요.” “아, 그렇구나. 저희는 지금 점심 먹고 서울로 가려고 하는데, 미사를 드리고 가야 하나!” 그러자 다른 자매님이,

“신부님, 혹시 이 근처에 맛집 좀 알려 주세요. 점심 먹고 와서 미사 드린 후 서울로 올라갈게요.”

“그러시겠어요?”

그러자 그 형제님은

“아, 좋네요. 저는 이분들 운전을 해 주는 사람인데, 점심을 먹고 와서 여기서 미사 드리고 서울로 가면 좋겠네요. 혹시 신부님도 식사 안 하셨으면 같이 해요.”

“아, 예. 저는 방금 즉석밥 하나 먹었어요. 이 근처 00식당에 가시면 좋아요. 제가 전화를 해 둘게요.”

나는 곧바로 식당 예약을 해 드렸고, 그분들은 고마워 하면서 식사하러 가셨습니다. 나는 사실 속으로 ‘서울까지 먼 길 가셔야 할 분들이 3시 미사를 봉헌하실 수 있을까…’하며 반신반의했습니다. 오후 3시가 다가오자 성당에 가서 미사 준비를 한 후, 혼자 조용히 앉아 미사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정말 그분들은 식사 후에 차로 주변을 둘러보고 미사 시간이 되어 성당으로 다시 오셨고 함께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회양목 길을 넘어가는 실수를 하시던 형제님 덕분에 그 일행들은 자신들이 원했던 ‘순례 마무리 미사’를 봉헌할 수 있었고, 저는 이곳 성지에 3시 미사가 있음을 알리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형제님의 실수가 우리 모두를 은총으로 이끌어 준 듯했습니다.

실수! 때로는 하느님의 섭리로 이끌어 주는 계기가 된다는 사실도 확인케 됩니다. 하느님 섭리의 방법은 참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