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첫 마음 / 함상혁 신부

함상혁 신부(제1대리구 공도본당 주임)
입력일 2021-07-13 수정일 2021-07-13 발행일 2021-07-18 제 3254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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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신부님들이 조금은 자유롭고 친근한 느낌이지만 제가 어렸을 때 신부님은 정말 가까이 하기 어려운 존재였습니다. 늘 까만 옷을 입고 다니시고, 제대 위에서 엄숙하게 미사를 드리는 신부님들 모습은 요새 표현으로 인간계가 아니라 천상계에 계시는 듯했습니다. 이런 저에게 예비신학생이 되어 처음 가 본 사제서품식은 정말 압도적인 장면이었습니다. 그 큰 실내체육관을 가득 메운 사람들, 하얀 옷을 입고(저는 복사를 하지 않아서 장백의라는 이름을 몰랐습니다) 바닥에 엎드려 기도하는 모습은 너무 감동적이었고, ‘나도 저분들처럼 살아야겠다’라는 결심을 하며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몇 시간 동안 이어지는 서품식은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고 가슴 벅찬 시간이었습니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저분들처럼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이 순수한 첫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얼굴만 변할 줄 알았는데 마음도 변하더군요. 요즘은 서품식 때 안내 팸플릿을 보고 수품자들이 많으면 ‘오늘은 미사가 꽤 오래 걸리겠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성인호칭기도 때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이 그렇게 멋있어 보였는데 지금은 기도하다 보면 허리와 무릎이 아파 분심이 듭니다. 저의 첫 마음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없어진 것일까요? 아니면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것일까요?

사제품을 받고 나서 첫 미사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새롭고 감사했습니다. 특히 처음으로 병자성사를 갔던 때가 기억납니다. 병세가 악화돼 거동을 못하시고 누워만 계시는 할아버지께 병자성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기력이 없으셔서 말씀도 못하시지만 다행히 성체는 영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봉성체 준비도 해서 방문했습니다. 같이 간 봉사자가 할아버지께 “신부님 오셨어요”하니 이분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시는 겁니다. 말씀할 힘조차 없으신데 눈물을 흘리신 것은 아마도 본인이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직감한 것이었겠지요. 예전 교우분들은 죽기 직전에 병자성사를 청하셨으니까요.

조용히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을 보며 저는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이분을 조금만 더 살게 해 주십시오. 며칠만이라도 더 살게 해 주십시오.” 십여 분을 그렇게 기도하고 성당으로 돌아왔습니다. 생명의 끈이 다하셨는지 그분은 며칠 후 돌아가셨지만 간절히 기도했던 그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병자성사를 가면 이렇게 물어봅니다. “의사 선생님은 뭐라고 하시나요?” 가족들에게도 무미건조하게 물어봅니다. “병원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하느님을 믿는 것인지 의사를 믿는 것인지 헷갈립니다. 생명의 주관자를 의사라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첫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잘 간직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저도 첫 마음을 찾을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함상혁 신부(제1대리구 공도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