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글로벌 칼럼] (85) 악어 같은 미국 주교회의 / 윌리엄 그림 신부

윌리엄 그림 신부 (메리놀 외방전교회),메리놀 외방전교회 사제로서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입력일 2021-07-13 수정일 2021-07-14 발행일 2021-07-18 제 3254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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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가 분명 죄인 것은 맞지만 낙태 지지 신자 정치인에 대한 주교들의 영성체 금지 주장은 민주주의 체제 무시하는 것이자 이미 줄어든 영향력 더 잃는 일

독일 태생의 미국 시사만화가 토마스 나스트(1840-1902)는 공화당의 코끼리 상징을 만들어냈다. 민주당은 당나귀로 표현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산타클로스의 이미지도 그가 1860년대에 만들어 낸 것이다.

나스트는 가톨릭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았지만, 가톨릭교회를 반대했다. 그가 1871년 그린 ‘미국의 갠지스 강’이라는 시사만화는 수정을 거쳐 1875년 공개됐다. 이는 아마도 19세기 가장 유명한 반가톨릭교회 시사만화일 것이다. 그는 만화에서, 주교들을 강에서 나와 아이들을 공격하는 악어로 묘사했다. 최근 미국 주교들이 성직자 아동성추행에 빌미를 주고 이를 은폐하자, 그의 만화가 재조명됐다.

나스트는 20세기의 많은 미국인과 마찬가지로 가톨릭교회가 미국의 민주주의와 미국 정부 시스템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했다. 1960년 존 케네디가 가톨릭 신자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자, 많은 사람들은 그가 미국 주교들과 교황청의 볼모가 될 것이라 생각했고, 케네디는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주교들이 악어가 되어 미국을 신정국가로 만들기 위해 강에서 나오고 있다는 근거 없던 공포감이 현실화되고 있다. 미국 주교회의는 최근 총회에서 교황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찬성으로 영성체에 관한 문건을 준비하기로 했다. 미국 주교회의의 이러한 움직임은 조 바이든 대통령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같은 정치인에 대한 공격을 더욱 심화시킬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과 펠로시 하원의장은 가톨릭 신자이지만 낙태를 지지하는 민주당을 이끌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처음부터 낙태를 죄악으로 여겨왔다. 12사도의 가르침이 담겨있는 「디다케」에는 “낙태로 아이를 살해하거나 태어난 아이를 죽이지 말라”는 구절이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교회의 가르침에 확신을 갖고 있지만, 한 민주국가의 지도자로서 정치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교회의 가르침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밝히고 있다. 펠로시 하원의장은 낙태 문제에 대해 더 ‘정치적’으로 나서며 자신의 견해를 밝히지 않고 있다.

미국 주교들은 어떤 결과를 기대하는 걸까? 주교들은 이들 정치인들이 어떤 결과를 낳길 바라고 있을까? 가톨릭 신자들을 이용해 이들 정치인들이 당의 정책을 저버리고 전체 유권자의 뜻을 무시하길 바라는 것일까? 주교들은 이렇게 하면 낙태를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걸까?

낙태는 죄악이다. 하지만 공직에 있는 가톨릭 신자의 영성체를 거부한다고 해서 낙태가 만연하고 있는 현실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을까? 주교들은 특정 후보에게 표를 주지 않도록 영향력을 발휘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 경우, 그가 국민의 뜻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될 경우에만 해당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부에 가톨릭 신자가 없을 경우, 사형폐지나 인종 차별, 핵무기, 보건, 빈곤 등의 문제 해결이 더딜 수 있다. 미국 주교들이 선호하는 정당은 이러한 정책에 반대하고 있으며, 이 정당은 자신에 반대하는 유권자를 억누르려하기 때문에 민주주의 또한 후퇴할 수 있다.

정치인들에게 영성체를 거부하자고 주장하는 주교들 몇몇은 공개적으로 이러한 정당을 지지하고 있으며, 한 주교는 바이든이 지난 선거에서 대통령 자리를 훔쳤다고 주장하는 ‘빅 라이’(Big Lie)에 공공연하게 동조하고 있다.

주교들은 미국 국민의 생각은 고려하지 않고 낙태 반대라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을 강제로 주입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달리 말하면, 주교들은 국민들의 뜻에 반해 성직자들의 거부권을 행사해 민주주의가 아닌 신정국가로 만들려는 것이다.

주교들은 낙태 문제에 관한 미국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민주주의 체제를 무시하고, 대신 가톨릭판 ‘아야톨라’가 되려고 하고 있다.(아야톨라는 후보자와 국가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이란의 정치지도자를 말한다.)

물론, 미국 주교들의 이러한 시도는 실패할 게 뻔하다. 미국 주교들이 ‘영성체 무기화’에 만장일치로 동의하지 않는다면, 미국 주교회의가 내어 놓는 그 어떤 것도 교황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미 교황청은 미국 주교회의에 성급하게 나서지 말 것을 요청한 바 있다.

미국 주교단이 갖고 있는 두 번째이자 더 큰 문제점은 그들이 미국 사회에서 영향력과 존경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 가톨릭 신자 수도 점점 줄고 있다. 이미 태어난 이들에게서 존경을 받지 못하면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의 옹호자가 될 수는 없다. 미국 주교들은 정치인을 공격해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방식으로는 그들이 잃은 것을 다시 얻을 수 없다.

신앙과 공직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몇몇 정치인들은 복음을 선포하고자 하는 미국교회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 주교단이 악어가 되려고 한다면 미국교회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윌리엄 그림 신부 (메리놀 외방전교회),메리놀 외방전교회 사제로서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