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손편지 / 박혜림

박혜림(아녜스) 시인
입력일 2021-07-13 수정일 2021-07-13 발행일 2021-07-18 제 3254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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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손편지를 쓴 적이 있었다. 편지 쓰는 일이 일상일 때였다. 하지만 자주 편지를 주고받았던 친구가 오랜만에 전화를 할 때까지 나는 그때의 기억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늦은 저녁, 흥분한 그녀의 목소리는 마구 떨렸다. 그녀는 내가 보낸 수많은 편지를 조목조목 언급하면서 모처럼의 회한에 젖었다. 책장 정리를 하면서 만년필로 쓴 편지, 볼펜으로 쓴 편지, 그리고 연필로 쓴 옛날 손편지를 발견하곤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처음엔 누가 쓴 것인지 얼른 알아보지 못해 한참을 더듬어 읽다가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글씨체와 어투를 보고 또 보다가 그만 방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고 했다. 오래전에 썼던 손편지가 아직 남아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 놀라웠고, 잊고 살았다는 것은 더 놀라운 일이라고 했다.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논했던 우리의 연둣빛 시절, 수십 년 저쪽의 시간이 한달음에 달려와서 눈앞에 다시 펼쳐진 것만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다고 했다. 누렇게 바래진 편지봉투를 한참 어루만지다가, 이제는 희미해져버린 70년대 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를 하나하나 날짜순대로 정리한 후 잠시 벽에 기대앉아 있다가 문득 내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밤이 늦었지만 목소리를 들어야겠다는 것이었다.

수십 년 전, 서로의 안부와 미래가 못내 궁금했던 20대. 덜 여문 인생의 작고 여린 이야기, 보나 마나 앞뒤 없는 추상적이고 감상적인 고민을 마구 쏟아내었을 것이다. 당장 눈앞에 놓인 버거운 현실에 대한 두려움과 안개에 싸인 미래는 또 어떻게 펼쳐야 할 것인가, 아니, 무엇보다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내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이 깊었다.

당시 인상 깊게 읽은 책의 대목을 꼼꼼히 옮겨 적으며 나의 심정인 것처럼 덧붙인 대목도 있었다. 토마스 만을 언급했고 루이제 린저의 「다니엘라」와 「생의 한가운데」를 읽고 고뇌했으며, 「완전한 기쁨」의 부분을 인용하기도 했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내일을 또 어떻게 살아야 더 나은 삶이 될 것인가, 밑도 끝도 없이 문장을 이어나갔던 모양이었다.

친구가 떨리는 목소리로 편지글을 또박또박 읽어나갈 때 민망해서 나는 얼굴을 감싸 안았다. 소심했으며 유치했고 더없이 엉성한 나를 보았다. 친구는 문장 중에 한자를 섞어 쓴 부분이 무척 인상적이라고도 했는데 유식한 척도 했던 모양이었다. 더는 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곧 나는 수십 년 전의 편지를 아직도 보관한 친구에게 정말 감사했다. 친구는 잃어버린 시간을 조금이라도 되돌려 받은 것 같아 자기가 더 고맙다고 했다. 가끔 꺼내 읽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 친구와는 이게 다가 아니다. 어느 날, 김대건 신부님과 한국 순교성인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뜻밖에도 ‘네가 믿는 하느님’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이다. 오래전 토요일 저녁 주일미사 때 성당에서 흘러나온 성가에 이끌려 스스로 세례를 받게 된 나의 이야기를 여러 번 귀담아들었던 터였다. 어느 볕 좋은 날, 친구는 망설임 없이 세례를 받았고 참 좋은 신앙인이 되었다.

‘그대로 두어도 좋을 것에는 될 수 있는 한 손질을 덜 하고 그대로 바라보기로 한다. 있는 사물을 그대로 본다는 것은 내 자신과 대상을 수평적으로 같은 자리에서 대하는 것이다’라는 법정 스님의 글을 서두로 오랜만에 친구에게 편지를 쓴다. 우체국 소인이 찍힌 오늘의 편지가 곧 친구에게 당도할 것을 기대하면서.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박혜림(아녜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