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아시오?” 풍랑도 막지 못한 필사의 선교 의지 감시 피해 다녀야 했던 선교 ‘예수와 마리아’를 암호로 삼고 신자들과 접촉해 소식 주고받아 폭풍우에 당당히 맞선 김대건 중국 관리 의심 슬기롭게 극복 성사 거행에 계책 동원한 최양업 외교인 집 빌려 미사 봉헌 성공
우리는 흔히 어떤 목적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미지의 땅을 찾아나서는 일을 모험이라 부른다. 이런 면에서 봤을 때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와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의 여정은 대단한 모험이었다. 늘 위기와 위험이 도사리는 길을 걸었던 두 사제에겐 수많은 모험담이 있다. 김대건과 최양업의 모험담 중 몇 가지를 지면을 통해 소개한다.
■ 정체를 숨겨라, 암호명 ‘예수’ 김대건은 1844년 중국 훈춘을 경유해 조선 입국을 시도하고 있었다. 조선 경원의 관장이 정한 교역날이 되자 김대건은 중국 상인들 틈에 섞여 경원의 시장으로 갔다. 김대건은 허리띠에 붉은색 차주머니를 차고 손에 흰 손수건을 들고 군중 사이로 들어갔다. 조선 연락원과 약속한 표지였다. 마침내 낯선 사람이 김대건 일행에게 다가왔다. 김대건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예수의 제자요?” “그렇소.” 김대건 일행과 신자들이 모인 모습과 대화 분위기가 주변의 이목을 끌게 되자 김대건 일행은 재치 있게 대응했다. “이것 얼마 받겠소?” “80냥이오.” “그건 너무 비싸오. 자, 50냥 줄 터이니 당신 가축을 팔고 가시오.” “안 될 말씀이오. 조금이라도 덜 주겠다면 안 팔겠소.” 가축을 흥정하는 척 주위를 속인 김대건은 다시 신자들에게 조선교회의 상황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예수’. 외교인들은 알 수 없지만, 신자라면 모를 수 없는 이름이었다. 신자들에게는 신앙 그 자체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비밀스러운 암호가 됐다. 최양업에게도 그랬다. 1847년 당시 부제였던 최양업은 조선으로 향하는 프랑스 함선에 올랐다. 하지만 배는 조선 근해의 섬에 다다라 심한 돌풍에 좌초되고 말았다. 최양업은 고군산도에서 한 달 이상 천막을 치고 생활해야 했다. 조선 입국이라는 희망은 좌절됐지만, 최양업은 조금이라도 신자들 소식을 알아낼 수 있을까 해서 매일 같이 인근 고을에 숨어들어 탐문하며 기웃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가까운 고을에 다녀오기 위해 작은 배를 탄 최양업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배에 오른 사람들과 필담으로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를 유심히 지켜보던 한 사람이 조용히 최양업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예수와 마리아를 아시오?” 드디어! 최양업은 방금까지의 조심성마저 잊은 채 희열에 차 조급하게 대답하고 물었다. “알고말고요! 잘 압니다. 당신도 압니까? 당신은 그들을 공경합니까?” 그 신자도 그렇다고 하면서도 외교인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대화를 중단했다. 그들은 몰래 필담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 신자는 가족 모두가 신자고 또 모레 신자의 작은 배 한 척이 이곳에 올 것이라는 말을 하고 헤어졌다. 안타깝게도 이 비밀스러운 만남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최양업은 고군산도에 남아있고 싶어했지만, 함장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양업은 “서원까지 하면서 간절히 소망해 마지않았고 또 천신만고 끝에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손안에까지 들어온 우리 포교지를 어이없게 다시 버리게 됐다”며 “저도 모르게 눈물을 줄줄 흘렸다”고 기록하고 있다.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