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597) ‘강석진 고객님… 어?’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1-08-17 수정일 2021-09-09 발행일 2021-08-22 제 3258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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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현재 소임 맡고 있는 공소 마당에는 두 개의 컨테이너 건물이 있습니다. 하나는 주방 시설이 비치된 모임방으로, 다른 하나는 소소한 작업을 하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작업 공간에서 요즘은 청보리를 받아다가 방앗간에서 빻은 후, 1㎏씩 봉지에 담아서 택배로 판매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개갑순교성지 수도원 건축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전에 청보리 미숫가루 발송 작업을 마치고 수도원으로 들어가는데 우편함에 종이쪽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우편물 도착 안내서] … 강석진님에게 발송된 우편물을 가지고 왔는데, 그 우편물은 ‘본인지정등기’이고 … 강석진님 부재로 배달하지 못하였습니다 … 0월 0일까지 00 우체국에 보관하오니 신분증을 준비하여 오시면 찾아가실 수 있습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컨테이너에서 작업하는 동안, 우편집배원이 등기우편을 가지고 왔었는데, 수도원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보여서 쪽지를 붙여놓고 간 모양입니다. 기다리던 우편물인데! 혼자 속으로 ‘아이 참, 집에 있었는데. 벨이라도 눌러 보시지. 휴… 이 더위에 우편물을 찾으러 가야 하니…’하고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우체국 점심시간은 12시-13시라 생각해서, 점심을 간단히 먹고 13시에 맞추어 00우체국에 갔습니다. 그런데 글쎄 우체국 문은 닫혀있었습니다. 문 앞에 붙은 내용은 [우체국 점심시간 12:30-13:30]. 30분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할 수 없이 차에서 내려, 나무 그늘 밑에 앉아 30분을 기다렸더니, 우체국 문이 열렸습니다. 들어가자마자 우편물 담당 창구로 가서 말했습니다.

“제 앞으로 등기 우편물이 왔다는데, 수취인 부재로 찾으러 왔어요. 그런데 집에 사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벨 한 번 안 누르고 ‘수취인 부재’ 딱지 한 장 달랑 붙이고 그냥 가버릴 수 있어요?”

“아. 예. 상황을 확인해 볼게요.”

그 직원분은 우편물을 배달하는 분에게 전화를 했고, 서로 뭐라 말하는 것 같더니 전화를 끊고 내게 말했습니다.

“지금 오고 계시는 중인데, 10분만 기다리시겠어요?”

“아니 10분 더 기다리라고요? 쪽지에는 바로 찾을 수 있다고 붙여 놓았잖아요.”

“죄송합니다, 저 쪽에서 커피나 차 한 잔 드시고 기다리시겠어요? 고객님, 담당 기사님께서 우편물을 가져 오면 알려 드릴게요.”

온갖 인상을 쓴 채 소파에 앉아서 진열된 책자들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는데, 땀은 왜 그렇게 나는지! 10분~15분쯤 흘렀을까, 한 집배원이 얼굴 전체를 가린 마스크에 안전모를 쓰고 우체국 안으로 들어왔고, 우편 업무 직원에서 뭔가를 확인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직원은 소파에 앉아 있는 나를 쳐다보았고요. 순간, ‘내 우편물이 왔구나!’ 싶어 일어나서 창구로 갔습니다. 그러자 그 직원분이 내게 먼저 말했습니다.

“네, 여기 우편물이 왔어요. 음, 성함이 강.석.진 고객… 어, 어, 신부님, 혹시 신부님이세요?”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이 무더위에 자신의 우편물을 찾으러 오게 만들었다고 불평하던 고객이 ‘신부’라는 사실에…! 나 또한 그분이 ‘신부님’이라 호칭을 해서 놀랐습니다. 담당 집배원의 안내에 따라 수취 확인 화면에 이름을 쓰고 서둘러 우체국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우편물을 보니, 나에게 등기를 보내 준 곳에서 너무나 친절하게도 아주 큼직하게 ‘강석진 신부님께’라고 적어 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 이런….’

세상살이, 휴…. 조심하며 살아야겠습니다. 나 또한 아무 것도 아닌 것에 투덜대고 짜증낼 수 있지만, 혹시 이 땅의 모든 ‘신.부.님.’ 이름에 흠집 내지는 않아야 하기에! 그래서 그날 돌아오는 길에 오후 내내 애꿎은 더운 날씨만 탓하며 궁시렁거리고 또 투덜거렸습니다. ‘아니, 오늘 왜 이리 무더운 거야…!’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