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599) ‘다들 힘들게 사시는구나!’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1-08-31 수정일 2021-08-31 발행일 2021-09-05 제 3260호 17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개갑장터순교성지 안에 수도원을 짓고, ‘순례자 쉼터’를 마련하기 위한 건축비를 모금할 때의 일입니다. ‘코로나19 때문에 모금이 어렵다’, ‘본당에 미사가 없어서 특강 등은 힘들 것이다’ 등 외적인 여건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에 현실적인 상황을 원망하기보다 뭐라도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역 특산품을 팔아볼 생각을 했습니다.

이에 고창이 자랑하는 ‘청보리 미숫가루’와 성지 근처 홍농본당 주임 신부님의 배려로 소개받은 가공 공장에서 손질한 법성포 ‘굴비’를 팔 계획을 세웠습니다. 처음 해보는 지역 특산물 판매라, 이런 생각도 해보고 저런 계획도 짜 보면서 여러 가지 방법들을 고민한 후에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미숫가루 판매를 위해서는 먼저 직접 보리농사를 지은 분을 찾아가서 가마니 채로 햇보리를 구입했습니다. 그걸 동네 방앗간에 가지고 가서 잘 빻은 다음 1㎏씩 비닐봉지에 담아 ‘개갑장터순교성지 수도원과 순례자 쉼터 건축’이라는 스티커도 붙였습니다. 굴비 역시 사진과 함께 굴비를 맛있게 드시는 방법을 정리하고 홍농본당 주임 신부님의 안내를 받아 작성한 판매 문구까지 한데 모아 전단지처럼 작성하였습니다. 그리곤 전국에 있는 지인 분들에게 ‘미숫가루’와 ‘굴비’ 판매를 알리는 안내 문자를 발송했습니다.

문제는 주문 접수를 ‘누가 받느냐!’입니다. 직원을 둘 형편은 안 되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신부님과 내가 미숫가루와 굴비 구입 전화와 문자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국에 있는 지인분들에게 미숫가루와 굴비 판매를 알리면서 구입 문의와 연락처로 내 번호와 동료 신부님의 번호를 알려 주었습니다.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정말 신기하게도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매일 저녁마다 그날의 주문을 마무리하고 그 다음 날 아침에 박스 작업을 했고 이내 택배업체를 불러 발송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5000원, 1만 원 등 수익금이 조금씩 쌓였습니다. 그러다가 일주일 정도 지나자 본격적으로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주문 전화와 문자가 오는 만큼, 수없이 많은 물품 관련 문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혹시 미숫가루를 어떻게 빻았어요?’, ‘보리만 따로 살 수 없나요?’, ‘굴비가 짠가요?’, ‘굴비 보관은 어떻게 해요?’, ‘포장도 선물용으로 손색 없네요’, ‘그런데 좀 더 싼 건 없어요?’, ‘다른 물품은 안 팔아요?’, ‘굴비와 미숫가루를 같이 주문하면 택배비가 빠지나요?’ ‘신부님이세요, 아이고 좋은 일 하시네. 그럼 수고하세요, 뚝-!’, ‘공음면, 개갑, 거기가 어디에요? 뭐하는 데예요?’

때론 나의 실수로 주소를 잘못 입력하여 환불과 함께 반품도 받았고, 2개 주문하신 분 택배에 1개만 넣어서 야단(?)도 맞았으며, 택배회사 실수로 엉뚱한 곳에 배달되어 또다시 주문 넣어 드리기도 했습니다. 택배 주문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하루 정도만 늦어도 독촉하는 분들의 전화도 많이 받았습니다. 새벽 5시에 주문하신 분도 있고, 밤 11시가 넘어 주문하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 일주일이 지나다보니 한 달이 넘었고, 그러는 동안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 중 첫 번째가 ‘아, 돈 1만 원 벌기가 이렇게 힘들구나!’였습니다. 그 다음으로 ‘서비스 직종에 계신 분들, 특히 교환이나 안내를 하시는 분들의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크겠구나!’, 세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한 만큼 수입은 생기네!’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힘든 세상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고 있음을 나의 경험으로 생생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미사예물, 봉헌금, 교무금 등을 내주시니…. 교우 여러분, 진심 감사합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