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국회 통과 ‘탄소중립기본법’ 무엇이 문제인가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21-09-07 수정일 2021-09-07 발행일 2021-09-12 제 3261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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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기준에 한참 미달… 기후위기 대응, 정부 의지 안 보인다
세계 14번째 법제화 불구, 온실가스 감축 목표 턱없이 부족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35% 이상 감축… UN 권고는 ‘45%’
교회·환경단체 “기후재난 맞서려면 경제성장 유혹 버려야”

8월 31일 국회를 통과한 ‘탄소중립기본법’은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를 2018년 기준 35% 이상으로 설정했다. 이는 국제기준에 크게 못미치는 것이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탄소중립은 모든 화석연료 사용을 멈춰야 이룰 수 있다. 폴란드의 한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연기가 뿜어져나오고 있는 모습. CNS 자료사진

국회가 8월 31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이하 탄소중립기본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기후위기에 직면해 2050년까지 탄소 배출을 제로화함으로써 기후 재앙을 막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이 법은 실제로 탄소배출 감축 목표를 국제기준에 턱없이 못 미치게 설정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성장을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보다 우선시한 내용으로, 전문가들과 시민사회단체들에 의해 격렬한 비판을 받고 있다.

국회는 8월 31일 오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 이른바 탄소중립기본법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한국은 유럽연합, 스웨덴, 영국, 프랑스 독일, 덴마크, 스페인, 뉴질랜드, 캐나다, 일본 등에 이어 세계에서 14번째로 탄소중립을 법제화한 나라가 됐다.

국민의 힘과 정의당 등 야당의 반대 속에서 사실상 여당 단독으로 심사, 통과된 이 법의 골자는 2030년까지 2018년 기준 우리나라의 탄소 배출량에서 최소 35% 이상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설정이다. 즉,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 제로 수준을 달성하기 위한 중간 단계로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를 법에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감축 목표가 실제로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중간단계 목표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 탄소중립기본법 개요

탄소중립기본법은 기후대응에 대한 실효성 여부와 별도로,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국가 정책 방향을 법제화했다는 최소한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법에는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환경과 경제의 조화로운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국가비전으로 한다”는 조항을 담았다. 우리나라는 2020년 12월 유엔에 제출한 장기저탄소발전전략을 통해 2050 탄소중립 전망을 선언했고, 이번 법에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법정 절차와 정책 수단을 담았다.

또한 2050년 탄소 중립 비전과 이행체계를 법제화하고 2030년 중간단계 목표를 설정했으며, 전문가와 산업계 외에도 미래세대와 노동자, 지역주민들이 탄소중립 추진 과정에 참여하도록 했다. 아울러 정부는 기후변화영향평가제도와 온실가스감축인지예산 제도, 기후대응 기금 등 탄소 중립 이행을 위한 실질적 정책 수단도 명시했다. 취약계층과 지역을 지원하는 ‘정의로운 전환’의 구체적 수단 마련을 지향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의 협력 체계를 강화하는 방안도 규정했다.

■ 국제기준에 못 미치는 감축 목표

탄소중립기본법의 핵심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치다. 탄소중립 이행 절차의 법제화라는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 법안이 기후위기 대응 법안으로서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는 여기에서 나타난다.

법 제8조는 “정부는 2030년까지 2018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의 35% 이상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만큼 감축하는 것을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로 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정부가 오는 11월 유엔에 제출할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의 하한선을 설정한 것이다.

2018년은 우리나라 탄소배출량이 7억910만 톤으로 최대치를 기록한 해다. 여기에서 35%를 감축하면 4억7290만 톤이다.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2030년까지 ‘2010년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45% 이상’을 줄여야 한다고 권고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0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6억5600만 톤으로, 그 45%를 줄이려면 연간 배출량을 3억6000만 톤까지 줄여야 한다.

따라서 법이 제시하고 있는 감축 목표는 유엔이 제시하는 수치에 비해 무려 1억1290만 톤이 모자란다. 결국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우리나라의 탄소중립기본법의 감축 목표는 국제 기준 대비 1억 톤 이상이 못 미치고 2030년에 1억 톤 이상의 탄소배출을 더 할 경우 2050년 탄소중립은 불가능한 목표가 된다.

서울대교구가 지난 2017년 서울시와 협약을 맺고 명동성당 앞에 설치한 태양광 발전기. 교회는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녹색성장’이라는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 환경단체, 일제히 비난 성명

시민환경단체들은 법안 심의와 통과가 진행되는 동안 강력한 비난 성명을 발표하고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이처럼 낮게 설정된데 대해 ‘기후악당법’이라고 비난했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법안 통과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기후정의는 찾을 수 없고 탄소중립의 길은 안일한 목표와 부실한 수단으로 스러졌으며 성장과 시장이 주인공임이 다시 확인됐다”고 비난했다. 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8월 19일 녹색연합은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2010년 대비 최소한 절반 이상 줄인다는 목표를 전제로 했어야 했다”며 “2050년 탄소중립을 의무가 아닌 ‘목표’로만 규정했다”고 지적했다.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 박현동 아빠스는 8월 24일 성명서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탄소중립 관련법 제정을 촉구합니다’에서 “제때에 적절한 양을 감축하지 않으면 2050년 탄소중립은 무의미하다”고 선언했다.

그러면 적절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8월 31일 국회 본회의 반대 토론에서 국제적 권고 수준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2030년 온실 가스 감축 목표가 2010년 대비 45%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한국에 적용하면 2018년 기준으로 50.4%에 달한다.

법은 2018년 대비 35%를 명시했지만 확정적 수치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공은 탄소중립위원회로 넘어갔고, 이후 정부는 10월 중 이를 정해 대통령령으로 확정하게 된다. 한국 그린피스는 9월 1일 성명에서 탄소중립위원회를 향해 “현재의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018년 대비 최소한 50% 이상으로 설정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실효성 있는 실행계획 수립”을 촉구했다.

■ 기후위기 대응이 경제성장에 앞서야

이번 법안의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은 부실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 외에도 법안 전반에서 비롯된다. 기후 및 환경단체들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이라는 개념과 경제성장이 병기된 것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8월 31일 성명에서 “초유의 기후재난에 맞서려면 경제성장이 아닌 기후위기 대응이 우선시돼야 한다”며 이른바 “‘녹색성장’이 기후 위기 대응의 발목을 붙잡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경제 성장의 다른 이름인 ‘녹색성장’과 탄소중립 전략이 동일시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실제로 법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이라는 이름에서부터 ‘녹색성장’이라는 개념을 담고 있다. 부칙을 포함해 법에는 ‘녹색성장’이 총 167번 등장한다. 또한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환경과 경제의 조화로운 발전’을 국가 비전으로 한다고 규정했다.

결국 양립되지 않는 탄소중립과 경제성장의 두 가지 개념이 병기된 점은 이 법이 기후위기 대응 법안이 아니라 또 하나의 ‘경제 성장 지원법’이라는 의구심을 불러온다. 그리고 2050년 탄소중립의 중간 단계로서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가 터무니없이 낮게 설정됨에 따라 그러한 의구심이 사실로 확인됐다.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는 앞서의 성명에서 ‘녹색성장’의 유혹을 넘어서라고 촉구했다. 성명은 “2030년은 전 지구가 기후위기에 대응해 올바른 해결책을 시행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중요한 시점”이라며 “참된 ‘전환’을 이루려면 녹색성장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늦출 우려가 있는 법 제정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