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최양업 신부 다시 보기] 3. 시복 절차 어디까지 왔나?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21-09-14 수정일 2021-09-15 발행일 2021-09-19 제 3262호 8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새 기적 심사 준비 중… 시복이 선교 열정 본받는 계기 돼야
배티성지서 자료집 발간하며 1997년 시복 추진에 첫발
1998년 주교회의 추진위 구성
2005년 시복법정 개정되고 2008년에는 현장조사 실시
교황청에 2009년 청원서 접수
2016년 심문요항 심의 통과
프란치스코 교황, 가경자 선포
증거자 시복 절차에 따라 기적 심사 단계 통과 필요

2008년 5월 안동교구 진안리성지에서 최양업 신부 시복 현장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1821~1861) 시복시성은 한국교회의 오랜 염원이다. 그럼에도 최양업 신부가 아직까지 시복되지 않았기에, 신자들의 관심과 기도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최양업 신부는 ‘땀의 순교자’라 불리지만 순교하지 않은 증거자다. 현재 최양업 신부 시복은 증거자 시복을 위한 기적 심사만 남겨 두고 있다. 최양업 신부 시복을 위해 한국교회가 걸어온 길을 돌아봄으로써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알아본다.

■ 시복, 누구를 위한 것인가

최양업 신부 시복은 한국교회에 영예가 되고 한국교회사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일이다.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있다. “순교자나 영웅적 덕행을 실천한 증거자는 이미 하늘나라에서 천상 행복에 참여하고 있는데 시복시성을 왜 하는가?” 이 의문은 “시복시성을 통해 복자들과 성인들에게 어떤 영광을 돌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맥락을 같이 한다.

시복시성은 순교자나 증거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현재를 살고 있는 신자들이 시복시성 대상자들의 삶과 신앙을 배우고 기려 생활 안에서 복음적 삶을 증언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기 위한 것이다.(주교회의 발간 「시복시성 절차 해설」 머리말 참조)

이 점은 ‘시복시성 기도문’(주교회의 2014년 추계 정기총회 승인, 2017년 추계 정기총회 수정)과 ‘최양업 사제 시복시성 기도’(2006년 3월 1일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 인준) 등을 봐도 알 수 있다. ‘시복시성 기도문’에는 ‘후손인 저희들이 그들을 본받아 신앙을 굳건히 지키며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은총 내려 주소서’라는 문구가 나온다. ‘최양업 사제 시복시성 기도’ 중 ‘최양업 토마스 사제를 성인 반열에 들게 하시고, 저희 모두가 그의 선교 열정과 순교 정신을 본받아 이 땅의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위하여 몸 바치게 하소서’ 부분에서도 최양업 신부 시복이 결국 신앙 후손들을 위한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 시복 준비단계

최양업 신부 시복에 대한 논의는 1996년과 199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최양업 신부 사목거점이었던 청주교구 배티성지에서 「최양업 신부 전기 자료집」을 간행하면서 한국교회는 시복 청원 준비에 들어갔다. 성 김대건 신부가 1925년 시복, 1984년 시성된 것을 생각하면 최양업 신부 시복 추진은 한참 늦게 시작된 감이 있다. 한국교회 시복시성이 순교자들에게 집중됐기 때문이다.

1998년 10월 12일 주교회의는 ‘시복시성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했고, 2001년 3월 22일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를 통해 최양업 신부 시복시성 안건에 대해 주교회의가 청구인이 된다고 결정했다. 주교회의는 이 결정을 6월 9일 교황청 시성성에 보고했고 2003년 11월에 시성성에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시복 안건에 대한 관할권’과 ‘장애없음’을 신청해 2004년 1월 31일 ‘장애없음’ 통보를 받았다.(Prot. N. 2587-1/04)

2004년 12월 3일 주교회의는 최양업 신부 시복시성 안건을 진행할 법정대리인(청원인)으로 류한영 신부를 임명해 최양업 신부 시복 추진을 본궤도에 올렸다. 이어 주교회의는 2005년 4월 15일 담화문 ‘하느님의 종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시복시성 예비심사에 즈음하여’를 발표했다.

원주교구 배론성지 가경자 최양업 신부 묘소.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재판부 구성-시복재판과 현장조사

최양업 신부 시복은 2005년 10월 20일 ‘하느님의 종 최양업 토마스 신부 시복시성 안건 착수와 법정 구성 교령’이 공포되고 12월 3일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대회의실에서 시복법정이 개정됨으로써 본격적인 재판절차에 돌입했다.

이후 시복법정 회기가 연이어 열렸고, 2007년 4월 15일에 담화문 ‘하느님의 종 증거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기적 심사에 즈음하여’가 나왔다. 한국교회 시복시성 역사에서 증거자 시복에 필요한 기적 심사 내용을 처음으로 발표한 담화문이었다. 이후 2008년 5월 20~23일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2009년 5월 20일 시복시성 법정 종료 회기를 마쳐 6월 3일 최양업 신부 시복시성 법정 문서를 교황청 시성성에 제출했다.

■ 가경자 선포

교황청 시성성 심사는 2009년 5월 28일 시성성에서 최양업 신부 시복시성 청원서를 공식 접수하며 시작됐다. 곧이어 6월 3일 한국교회 대표단이 시성성을 방문해 최양업 신부 시복시성 조사 문서를 제출했다.

2011년 3월 11일 시성성은 최양업 신부 시복 안건 담당 보고관에 즈지스와프 키야스(Zdzislaw Kijas) 신부를 임명했다. 시복 안건 담당 보고관 임명은 시복 중요 절차인 심문요항(Positio, 시복 안건 담당 보고관이 작성하는 최종 심사자료) 제출을 위한 것이다.

2014년 8월 23일 시성성에 최양업 신부 심문요항 제출이 완료돼 2016년 3월 14일 시성성 추기경과 주교단 회의에서 심문요항 심의가 최종 통과됐다. 4월 26일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최양업 신부의 영웅적 성덕(Heroic Virtue)을 인정하는 시성성 교령을 승인하며 최양업 신부를 ‘가경자’로 선포했다.

■ 기적 심사

최양업 신부 시복은 현재 기적 심사 단계에 와 있다. 증거자 시복에는 순교자 시복과 달리 기적 심사 통과가 필요하다.

2015년 3월 1일 최양업 신부 기적 심사 청원인에 류한영 신부가 임명됐고, 9월 8일에는 기적 심사 법정이 개정됐다. 이후 2016년 5월 27일 기적 심사 법정 제13회기까지 열린 뒤 6월 15일 기적 심사 법정은 종료됐고, 6월 17일 시성성에 기적 심사 법정 문서를 제출했다.

한국교회는 최양업 신부 기적 심사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 새로운 기적 심사를 준비하는 중이다.

◆ 시복시성 단계별 호칭

대상자 되면 ‘하느님의 종’

영웅적 성덕 인정 ‘가경자’

지역교회 공적 공경 ‘복자’

보편교회 함께 공경 ‘성인’

시복시성 추진 대상자는 그 절차가 진행됨에 따라 호칭이 ‘하느님의 종’, ‘가경자’, ‘복자’, ‘성인’으로 바뀐다.

순교자나 성덕이 뛰어난 증거자 중 시복시성 추진 대상자로 선정되면 하느님의 종으로 불리게 된다. 지역교회에서 시복시성 추진 대상자를 선정해 그 생애와 행적을 담은 간략한 전기인 ‘약전’을 교황청 시성성에 보내면 시성성은 약전을 검토한 뒤 시복시성을 추진하는 데 ‘장애없음’ 교령을 보낸다.

시복시성 추진 대상자들은 이때부터 하느님의 종 호칭을 부여받는다.

가경자(加敬者, Venerable)는 하느님의 종이 교황청으로부터 영웅적 성덕을 인정받으면 주어지는 호칭이다. 가경자가 돼도 하느님의 종 호칭은 유지된다. 하느님의 종과 가경자 단계에서는 신자들이 시복 추진 대상자를 공적으로 경배할 수 없다.

복자(福者, Blessed)는 교회가 정한 시복재판 절차를 거쳐 시복식에서 선포되며, 신자들은 비로소 복자를 공적으로 공경할 수 있게 된다.

성인(聖人, Saint)은 이미 시복된 복자에 한해 시성식을 통해 탄생한다. 복자와 성인은 신자들이 공적으로 공경할 수 있지만 복자는 해당 지역교회에서 공경할 수 있는 것에 비해 성인은 전 세계 모든 교회가 공경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경의 지역적 범위에 차이가 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